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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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quote box|quote= 우린저흰 비틀즈로 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났습니다. 그 망할빌어먹을 몹톱(더벅머리) 꼬맹이 네 명이서 어프로치재롱을 하는떠는 게 정말 싫었다싫었어요. 우린 어린애가 아니라, 어른이었다어른이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자신을 공연인이 아닌 예술가로 생각했다생각했습니다.{{sfn|Miles|1997|p=303}} |source=– [[폴 매카트니]]|width=25%|align=right|style=padding:8px;}}
 
1966년, 비틀즈는 라이브 공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sfn|Lewisohn|1992|p=210}} 존 레논은 "밀랍 인형 4개가 무대에 올라가면... 관중은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비틀즈 콘서트는 이제 음악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그저 지독한 부족 의식일 뿐이지."{{sfn|The Beatles|2000|p=229}}란 말을 남겼다. 6월, 음반 《[[Revolver]]》 작업을 마무리한 뒤 2일 후, 그룹은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독일로 출발했다.{{sfn|MacDonald|2005|p=212}} [[함부르크]]에 있을 때, 그들은 "도쿄에는 가지마. 네 목숨이 위험해."라는 내용의 익명 전보를 받는다.{{sfn|Martin|Pearson|1994|p=7}} 일본에서 투어 중, 비틀즈는 일본무도관에서의 공연을 반대하는 종교, 보수단체의 위협을 받는다.{{sfn|Martin|Pearson|1994|p=7}} 추가 예방 조치로, 35,000여명의 경찰이 호텔에서 콘서트 장소로 이동하는 비틀즈를 지키기 위해 동원되었다. 일본의 침착한 청중들에 의해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졌고, 밴드는 자신들의 좋지 못한 라이브 공연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ref>{{harvnb|Lewisohn|1992|p=211}}; {{harvnb|Martin|Pearson|1994|p=7}}.</ref> 게다가 필리핀에 도착해서는, 필리핀의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를 방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위협을 받았다.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며 기분이 좋지 못했다.{{sfn|MacDonald|2005|pp=212–213}} 런던으로 돌아온 후,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장기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는 2주 정도 회복할 시간을 가질 겁니다.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에게 얻어 맞기 전에요."{{sfn|MacDonald|2005|p=213}} 그의 말은 [[존 레논]]의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 발언으로 현실이 되었다. 공식 사과로 긴장은 누그러졌지만, 1966년 9월 미국 투어는 절반만 찬 경기장과 수준 이하의 공연으로 끝났고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다.<ref>{{harvnb|Lewisohn|1992|pp=210: the Beatles grew tired of touring, 230: the Beatles' final commercial performance}}; {{harvnb|MacDonald|2005|p=213}}</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