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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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공헌 ===
정동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아펜젤러]]선교사가 맡았고, [[1902년]]에 제4대 담임[[목사]]로 [[최병헌]] 목사가 부임하면서 한국인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제5대 [[현순]], 제6대 [[손정도]], 제7대 [[이필주]] 담임목사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 [[1919년]]에는 담임목사 이필주와 전도사 [[박동완]]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면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열사도 정동교회 신자였다.
 
한국의 개화운동을 이끌었던 [[윤치호]]는 정동교회의 장로로 시무하였다. 그는 [[105인 사건]] 후 친일성향을 보였으며, 경성 [[YMCA]]의 총무와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