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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까지 서유럽 외의 세계는, [[사산 왕조]]로 대표되는 이란 문명권과, 동로마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문명권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7세기에 이슬람교가 성립되자, 종래의 여러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이들의 문명권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인 이슬람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슬림교의 교조인 [[무함마드|무하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라]]에의 절대적 귀의를 가르쳤다. 그는 한때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하였는데, 드디어 아라비아 전부족을 통일하여 이슬람 세계 건설의 기초를 닦았다. 마호메트의 사후, 역대 [[칼리파|칼리프]]는 이슬람 세계의 확립과 발전에 노력했기 때문에, 불과 1세기 동안에 동으로는 중앙아시아·인도로부터, 서로는 북아프리카·이베리아 반도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사라센 제국이다. 정복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제3대 오스만 시대 무렵부터 교단 내부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800년에 [[카롤루스 대제|카를 대제]]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 제국의 황제로 대관됨으로써 그 막이 열렸다. 이에 카를 대제는 교황에 의한 동로마 제국 황제의 간섭을 배제하고 로마 제국 이래의 통일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비잔틴 세계나 이슬람 세계와 구별되는 이른바 중세 유럽 세계라는 정치, 문화적 공동체였다. 카를 대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르네상스]]를 일으켜 민족 이동기의 쇠퇴했던 문화를 부흥시키고, 게르만·로마·그리스도교 등의 여러 요소를 융합시켜 오늘날까지도 내려오는 서유럽 공통의 출발점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고대 이래로 교역 활동의 중심무대가 되어 온 지중해가 사라센의[[사라센]]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서유럽 세계에서는 교환경제 사회가 자연경제 사회로 후퇴하게 되었던 까닭에, 대제의 사후에는 왕국도 분열되어 [[동프랑크 왕국|동프랑크]](독일)·[[서프랑크 왕국|서프랑크]](프랑스)·이탈리아 등 3국이 성립되었다. 그리고한편 영국에서도 색슨계의 통일 왕조가 성립되었다.
 
이 무렵의 유럽에서는 점차 장원제가 보급됨과 아울러 지배자와의 사이에 주종 관계가 일반화하기 시작하여 봉건제가[[봉건제]]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장원의 지역적 집중이 이루어짐으로써 나중에 영주권이 강화되어 왕권과 대립하게 되었고, 따라서 지방분권화 경향을 나타냈다. 한편, 교회도 이른바 교회령을 가지게 되며, 이 무렵에는 그 권력이 세속의 영주와 다를 바 없게 됨으로써 여기서 중세의 소위 2원적 지배체제가 성립된 것이었다.
 
=== 중세 성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