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소양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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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6년]], 무왕이 맹열(孟說)이라고 하는 힘이 샜던 장사와 주나라의 구정을 들어 힘자랑을 하였고, 경골이 부러지자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무왕이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 다툼이 일어났다.
 
공자 직은 당시 연나라에 있었지만, 조나라(趙)나라의 [[조 무령왕|무령왕]](武靈王)의 도움으로, 대군(代郡)의 재상 [[조고 (전국)|조고]](趙固)에 의해 연나라와 조나라를 거쳐서 진나라에 귀국할 수 있었다. 진나라에는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위염 (전국)|위염]](魏冉)등 신하들의 지원으로, 이복형 무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 치세 ===
[[기원전 306년]]부터 [[기원전 251년]]까지 재위하였는데 재위 초기 기원전 206년부터 이듬해 [[기원전 205년]]까지 승상 [[:zh:樗里子|저리질]](樗里疾)이 섭정하였다.
 
=== 즉위 이후 ===
재위 초기에는초기 기원전 206년부터 이듬해 [[기원전 205년]]까지 승상 [[:zh:樗里子|저리질]](樗里疾)의 섭정을 받았는데 아울러 이 당시에는 선대 무왕의 신하였던 [[:zh:樗里子|저리질]](樗里疾), [[감무 (전국)|감무]](甘茂), [[상수 (전국)|상수]](向壽), [[공손석]](公孫奭)등이 정사를 도왔다.
 
[[기원전 306년]], 초나라가 [[한 (전국)|한나라]](韓)을 토벌하였고, 한나라의 옹(雍)을 포위하였다. 그 때문에, 한나라는 [[공중 (전국)|공중]](公仲)이라는 사람을 사신을 보내 감무에게 아첨하여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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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중국사|군주}}
 
[[분류:진나라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