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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
도리아인의 침입은 각 지방에서 원주민과의 심한 충돌을 야기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이 정착한 지역에서는 어디에서든, 정복된 원주민들의 철저한 집단적 총(總) 노예화라는 공통현상을 일으켰다(예를 들면 테살리아의[[테살리아]]의 노노(勞奴, 페네스투이), 아르고스의[[아르고스]]의 ‘복복(僕伏:귬네티스)’ 스파르타의[[스파르타]]의 ‘포로(헬로타이)’, 크레타의[[미노스 문명|크레타]]의 ‘복노(僕奴:무노이타이)’ 등). 또한 아이올리스인이나[[아이올리스 인|아이올리스인]]이나, [[이오니아 인|이오니아인]] 등은 [[에게 해|에게해(海)]] 대안(對岸)의 소아시아 연안에 이주하여 이 난(難)에서 빠져나온 집단도 많았다―이오니아가 동서에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그리스인의 제1차 식민). 도리아인의 일부는 또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으로 진출(골튠 등)하였고, 다시 소아시아 연안 남부에 식민한 이외에, 선단은 팔레스티나 해안에까지 진출하였다(이스라엘과 싸운 필리스티네인들 [[사무엘기|사무엘]]」). 이집트에서도, 이 무렵 해구민족(海寇民族)으로서 그들의 습격을 기록하고 있다. 이 혼란과 파괴를 겪는 동안에 미케네 문명은 종식되었고, 그 전통도 단절되었다. 오리엔트와 흡사한 전제 소왕국군(群)의 멸망과 함께 궁정적 미케네 문자도 영구히 없어졌고, 그 후 약 300년 동안 그리스 역사는 문헌이 전혀 없는 [[그리스 암흑기|암흑 시대]](dark age)에 들어갔다.서광은 다시 기원전 8세기경부터 비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그리스는 도리아인의 침입과 함께 철기시대에 들어가, 기원전 9세기에 이르러 페니키아인으로부터[[페니키아|페니키아인]]으로부터 문자를 습득하여 표음문자인 알파벳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오늘날의 [[그리스 문자인문자]]인 것이다. 고전기(古典期)까지의 약 300년 동안은 미술 사상(史上)의 소위 ‘고졸시대‘[[고졸기 그리스|고졸시대]](古拙時代:아케이크)’에 해당되는 내면적 충실의 여명기며, 또 폴리스의 발생, 공동체의 진전, 헬라스 세계의 확대 등, 발전에의 형성기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 기간 동안 폴리스는 그 기초를 굳혔고(입법자의 시대) 또 흑해, 남이탈리아, 시칠리아섬([[마그나 그라이키아|마그나 그리스]]) 방면에의 소위 제2차 식민도 이루어져서 그리스사(史)의 내적(內的)·외적 대윤곽이 잡혀지는 것이다.
 
=== 아리아인의 침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