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선수권 대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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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월터 클롭튼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장군에 의해 최초에는 [[스티케]]라고 불렸던 스포츠인 [[테니스|론 테니스]]가 고안되었고, 1875년에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이것을 클럽 활동에 추가하였다. 1877년 봄에는 클럽 명칭을 ‘올 잉글랜드 크로케 앤드 론 테니스 클럽’으로 바꾸었고, 최초의 론 테니스 챔피언십을 개최하여 클럽 명칭의 변경을 널리 알렸다. 이 대회를 위해 이전까지 사용되던 [[매릴본 크리켓 클럽]]에서 만든 경기규정도 새롭게 정비하였다. 네트 및 네트 포스트의 높이, 네트로부터 서비스 라인까지의 거리 등 일부 세부적인 코트 규격을 제외하면 당시 제정된 규정은 오늘날 현대 테니스의 규정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갖고 있었다.
 
1877년의[[1877년]] [[7월 9일]] 시작된 첫 대회에서는 남자 [[테니스#단식|단식]] 경기만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스펜서 고어(Spencer Gore)가 구식 해로비안(Harrovian) 라켓을 사용하여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약 200명의 유료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전했다.
 
전체 경기장에서 메인 코트는 다른 코트들의 중앙에 위치하게 배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메인 코트에는 ‘센터 코트’(Centre Court)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1922년 경기장이 현재의 처치로드(Church Road)로 옮겨오면서 메인 코트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다른 위치로 배치되었지만 기존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4개의 코트가 경기장 북측에 새로 만들어지면서, 센터 코트의 위치는 다시금 실제로 전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