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황오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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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삼황오제'''({{zh-cp|c=三皇五帝|p=sānhuáng wǔdì}})는 [[중국]]의 고대 신화에[[신화]]에 등장하는 제왕들로 세 명의 [[황제|]](皇)과 다섯 명의 [[황제|]](帝)를 말한다. 이들 여덟 명의 제왕은 [[중국 문명의문명]]의 시조로 추앙되며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중국]]에서 신화가[[신화]]가 아닌 역사로서[[역사]]로서 추앙되었다. 현대의 역사학계에서는 삼황오제 신화가 후대에 창조되고 부풀려진 신화이며,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판단하고 있다.<ref>빈미정, 〈황제신화전설에 대한 문헌적 고찰〉, 《중국문학》제44집, 2005</ref>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중국은 중화민족주의에중화[[민족주의]]에 입각하여 국가 차원의 개입을 통해 삼황오제를 실존 인물로 격상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학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ref>김종미, 〈중국문헌(中國文獻)에 나타나는 "치우(蚩尤)"의 이중형상(1) -제국(帝國)의 희생양, 치우(蚩尤)의 악마형상-〉, 《중국어문학지》, 2007 / 김선자,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 신화》, 책세상, 2007</ref>
 
== 역사 ==
삼황오제 신화의 기본 틀이 되는 상고대 [[시조 설화의설화]]의 원형은 [[상나라]] 무렵부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춘추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가 각종 사상을 주창하고 제후들에게 유세하면서 삼황오제 신화가 창조되어 틀을 갖추어 나갔다. 오제 신화의 경우 [[음양오행설]]이 유행한 이후에 5명의 제왕이 신화로서 정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후대에 재창조된 신화이기 때문에 삼황과 오제의 구성원은 제자백가의 주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삼황오제 신화는 계속 재창조되었다.
 
삼황오제는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 역사적 사실로 오랜 기간 추앙되었다. 특히 [[황제 (전설)|황제]]와 [[요 (군주)|요]], [[순 (군주)|순]]은 중국의 이상적인 성천자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 [[강유위]], [[고힐강]] 등이 주도한 의고학파(疑古學派)의 연구를 통해 삼황오제 기록의 역사성이 부정되고 종교적 영향으로 꾸며진 신화임이 판명되었다.<ref>빈미정, 〈황제신화전설에 대한 문헌적 고찰〉, 《중국문학》제44집, 200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