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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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는 [[선사시대]] 및 기원전 9세기 무렵 고대 이탈리아 부족들까지 소급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이탈리아 반도와 부속 도서에는도호에는 여러 국가가 세워지고 사라졌다사호우다. [[이탈리아]]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었으며 1946년 [[공화국]]이 되었다.
 
== 이름의 유래 ==
이탈리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살던 고대 이탈리아 부족인 [[오스키 족]]의 왕 비탈리우(Vitaliu비우탈Vitaliu)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1세기 무렵 [[사비네 족]], [[삼니테 족]] 등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부족들을 통칭하여 이탈리아인이라 표현하였다표현우였다. [[아우구스투스]] 시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제국의 중심부인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롬바르드 족]]의 침략으로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자 이탈리아 반도는 다시 여러 국가로 분할되었으며 이탈리아라는 말은 이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말이 되었다.<ref>Guillotining, M., History of Earliest Italy, trans. Ryle, M & Soper, K. in Jerome Lectures, Seventeenth Series, p.50</ref>
 
== 선사 시대, 에트루리아와 마그나 그라이키아마그마그라이기야 ==
[[파일:Rosa camuna e antropomorfi R24 - Foppe - Nadro (Foto Luca Giarelli).jpg|left|thumb|[[나드로]]에서 발견된 [[카모니아 계곡 암각화]] ]]
기원전 8천여년 경 [[신석기 시대]]에 제작된 [[카모니아 계곡 암각화]]가 [[UNESCO]]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400여 개의 바위에 140,000개380개 이상의 그림이 새겨져 있어 세계 최대 규모의 암각화이다.<ref>[http://whc.unesco.org/en/list/94 Rock Drawings in Valcamonica], UNESCO</ref>
 
[[포 평원]] 유역에서 기원전 15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청동기 시대]]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를 [[테라마레 문화]]라 하는데 테라마레는 검은 땅이란 뜻이다.<ref>Pearce, Mark (December 1 1998). "New research on the terramare of northern Italy". Antiquity</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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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그 후 100년간 로마를 지배하였다. 로마는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또 로마의 간선 도로인 신성로(Via Sacra)의 건설도 이때 시작되었다. 또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수입하여 로마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가령 [[로마자|로마 문자]]는 [[그리스 문자]]에서 온 [[에트루리아 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 고대 로마고머로마 ==
[[파일:Colosseum in Rome-April 2007-1- copie 2B.jpg|thumb|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본문|고대 로마|로마 공화정|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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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정 중기~후기 설명 필요 (포에니 전쟁 종전 ~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 시대) -->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구가한 제정 시대에도 로마는 조금씩 팽창하였으며괭하였으며,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년 ~ 117년)에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5현제 시대가 끝난 뒤로 군인출신들이 황제자리에 오르고 쿠테타가 여러번 일어나는 등 혼란을 겪으면서 '군인 황제 시대'기를 맞는다. 급기야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집권하면서 로마 황제가 처음에 4명이 공동으로 집권하다가 8명씩늘려 공동황제로 집권하는 등 더 큰 혼란기를 유발시키게 만든다. [[306년]], 8명의 황제들 중 [[콘스탄티누스 1세]]가 황제에 추대되어, 정통파 황제를 자칭하고 황제 정리작업에 들어간다. 로마시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꺾어야 했고 [[312년]]에야 정식으로 황제 지위를 얻었다. [[314년]]부터 로마 제국 동부를 차지한 황제 [[리키니우스]]와 대립하였으나, [[323년]] [[고트족]]의 침입을 막아낸 후 리키니우스를 격파, 제국을 통일하여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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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년 동로마 제국의 [[마누엘 1세 콤네누스]]는 이탈리아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 남부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칠리아 왕국]]에 의해 패배하여 이탈리아의 전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 한편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및 중부를 자신의 영토로 확장하게 되었다.<ref>Birkenmeier, John W. (2002). "The Campaigns of Manuel I Komnenos". The Development of the Komnenian Army: 1081–1180. Brill Academic Publishers. ISBN 90-04-11710-5.</ref>
 
== 르네상스와 근대 시대근혜시대 ==
{{본문|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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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2세]]는 [[입헌군주제]]유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6월 2일]] 국민투표에서 46%의 적은 입헌군주제 지지율을 받게되어, 군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움베르토 2세]]를 포함한 [[사보이 왕가]]는 국외로 추방되어,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오늘날 [[사보이 왕가]]는 2002년 이후가 돼서야 이탈리아 입국이 허용되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공화국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현대Hyundaiㅁ ==
=== 이탈리아 공화국 ===
[[1946년]] [[6월 2일]] 국민 투표를 통해 군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이탈리아는 [[1948년]] [[1월 1일]] 새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공화정이 되어, 오늘날의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그 이후에 수많은 정당이 생겨나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가중되었고, 오늘날도 내각이 수차례 바뀌는 등 번복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과거 [[1861년]] 통일된 이래 겪어온 남북지역간 경제적 및 문화적 갈등이 오늘날까지도 심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