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링 울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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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링 울프는 [[머디 워터스]]와 함께 1950년대 [[일렉트릭 블루스]] 음악의 발전에 기여했고, [[블루스 록]]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그의 존재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로 대변되는 [[로큰롤]] 혁명 시기 이전에 [[일렉트릭 블루스]]의 일대 진척을 가져온, 즉 [[시카고 블루스]]의 표준을 제시한 [[블루스]] 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굳이 [[머디 워터스]]와 비교하자면 기타 실력은 떨어졌으나 [[블루스]] 창법은 오히려 그를 앞지른다. 그리고 1980년대 [[블루스 명예의 전당]], 199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겼고, [[롤링 스톤지]]는 그를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100인’ 순위에 51위로 랭크돼 한번 더 위상을 드날렸다.
 
== 생애 ==
하울링 울프는 [[1910년]] [[6월 10일]]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체스터 아서 버네트인 하울링 울프는 [[늑대]] 울음소리를 닮은 거칠게 노래하는 목소리로 인해 하울링 울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1930년대 [[델타 블루스]] 뮤지션 [[찰리 패튼]]으로부터 기타를,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 [[소니 보이 윌리엄슨 2세]]에게서 [[하모니카]]를하모니카를 배웠다.
 
하울링 울프의 초기 곡이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는 20년 이상 한솥밥을 먹은 흑인 기타리스트 [[휴버트 섬린]]과의 콤비 플레이가 결정적이다.
 
그로 인해 울프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진중해졌다. 하울링 울프가 그를 두고 “그는 내 음악의 정신적 지주”라 칭찬한 말이 그 사실을 대번 묘사해준다. 거기에 작곡자 [[윌리 딕슨]]의 가세로 하울링 울프의 음반은 그 무렵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오늘날까지 위대한 [[블루스]] 명곡으로 회자되는 〈I ain’t superstitious〉, 〈The red rooster〉, 〈Shake for me〉, 〈Back door man〉, 〈Spoonful〉, 〈Wang dang doodle〉 등은 모두 [[윌리 딕슨]]이 작곡한 것들이다.
 
결국 1950, 60년대 내내 울프의 보컬과 섬린의 기타, 그리고 딕슨이 주조한 곡조와의 연계는 마치 공식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심장마비]]로심장마비로 몇 차례 쓰러지는 등 병에 시달리다가 [[1976년]] [[1월 10일]] 사망했다.
 
== 음반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