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유물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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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唯物史觀)은 [[마르크스]]·[[엥겔스]]가 주장한 유물론적인 역사해석의 체계이다.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 '''역사 유물론'''이라고도 한다.<ref name="글로벌_1">유물사관,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 개요 ==
역사 유물론과 과학적 공산주의에 따르면 역사는 원시적 공산주의,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세 자본주의를 거쳐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가 공산주의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특이한 점은 다른 사관들은 주로 역사의 해석과정에서 인물, 사건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역사 유물론에서는 생산 수단과 생산량이 역사의 해석 과정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본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자로 계급이 발생한다고 보며 역사를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바라보는 갈등론적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 또는 사유재산제를 생각할 때에도 그것은 인간사회에서 떼어낼 수 없는 제도가 아니라 어느 시기에 역사적으로 성립하고 변화하고 발전되어 온 것으로서 언젠가는 소멸한다고 보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해를 인간사회의 역사에 입각해서 고찰한 것이 ‘사적 유물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실증적 연구와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인류의 사회가 아직 계급 차별이나 빈부 차별이 없었던 원시공동체 시기로부터 빈부의 차, 사유재산제가 조금씩 생긴 고대노예제로 나아가 여기에 비로소 계급사회가 성립한 것, 또한 봉건제 사회가 생기고 이를 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이론적으로 분명히 규명하려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계급적인 대립이나 차별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며, 특히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전위인 정당의 힘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ref>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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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엥겔스는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다시 사회주의사회, 공산주의사회의 차례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며, 노예제에서 자본제까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따라서 계급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역사관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의 변신론적(辯神論的) 역사 해석의 전통이 세속화되어 계승되어 있고 따라서 계몽사관의 전제가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독창적인 부분은 매우 근소하다고 보기도 한다.<ref name="글로벌_1"/>
 
하지만 역사 유물론은 1950년대에 들어서 공산당 내부의 비판을 피하고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폭 수정되었고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이론이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비롯해서 계급적 모순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역사해석을 시도해 왔으나 1958년 이후 공산권의 모순 논쟁에서는 모순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요,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그 원동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중·소 분쟁이나 체제내의 반목·비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유물사관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1년 스탈린의 논문 〈마르크스 주의에서의 언어학〉 이래 언어·문법·수학 등은 토대도 상부구조도 아니며, 따라서 계급적인 것도 아니라고 수정하게 됨으로써 유물사관의 토대·상부구조의 구분법을 스스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