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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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벌통 ==
벌을 인공 벌통에서 키운 것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이다.<ref>{{
[[이집트 제5왕조]] [[니우세르레]]의 [[이집트 태양 신전]] 벽면에는 [[기원전 2422년]] 이전 기록으로, 일꾼들이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벌집 내부에 연기를 불어넣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ref>{{
[[이집트 제26왕조]] Pabasa의 무덤에는 벌꿀 생산과 관련된 [[묘비|비문]] 세부 장식으로 [[항아리]]에 [[꿀]]을 저장하는 모습과, [[원통]] 모양의 벌통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ref>[http://www.agropolis.fr/pdf/rencontres-apiculture-2008/pays/Egypte.pdf Apiculture in Egypt, Dr Tarek Issa Abd El-Wahab]{{dead link|date=October 2016 |bot=InternetArchiveBot |fix-attempted=yes }}</ref>
고고학자 Amihai Mazar는 약 4000년 전 [[이스라엘]]에 진보된 양봉 산업이 존재했다는 근거로 Rehov(기원전 900년 경, 인구 약 2000명의 도시였던 고대 [[이스라엘]]과 [[가나안]] 지역)유적에서 발견된 벌통을 제시한다.
벌통은 30여 개가 발견되었는데 본래 100여 개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통]] 모양의 이 벌통들은 [[점토]]와 마른 [[지푸라기]]로 만들어졌으며, 3단 구조에 높이는 약 80cm, 넓이는 약 40cm이다.<ref>{{
Haifa 대학교의 Ezra Marcus는 근동 지역의 문자와 고대 미술에서 고대의 양봉으로 보이는 기록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제단에 장식된 풍요의 여신상과 함께 발견된 벌통은 [[양봉]]이 종교적 풍습이나 관습과 연관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 전통의 벌통 ==
[[
[[
[[전통]]의 벌통은 단순히 [[벌]] 군집을 둘러싸기 위한 용도였다.
벌통 내부에 벌들을 위한 [[구조물]]이 없었기 때문에, 벌들은 벌통 안에 자신들 고유의 벌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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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 벌통 / 진흙 타일 벌통 ===
[[
[[진흙]] 벌통은 [[이집트]]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진흙 벌통은 긴 [[원통]]형으로, 진흙과 [[짚]]과 [[똥]]을 혼합하여 만들어진다.<ref>[http://www.agropolis.fr/pdf/rencontres-apiculture-2008/pays/Egypte.pdf The Apiculture in Egypt, Dr. Tarek Issa Abde El-Wahab]{{dead link|date=October 2016 |bot=InternetArchiveBot |fix-attempted=yes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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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짚 벌통 ===
[[
[[
[[짚]] 벌통(skep)은 [[바구니]]가 엎어진 형태의 벌통으로,
2000여년 동안 사용되어 온 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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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서 벌들을 떼어내기 위해 약간의 [[유황]]이 사용되었는데, 상당한 [[꿀벌]]들이 희생되었다.
또한 짚 벌집은 [[바이스 (도구)|바이스]]로 압착해서 꿀을 추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1998년]]부터, 대부분의 [[미국의 주]]들은 짚 벌통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는 앞서 서술했듯 짚 벌통이 [[질병]]이나 [[해충]]을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ref name="SammataroAvitabile1998">{{
후기 짚 벌통 [[디자인]]에는 더 작게 짜여진 바구니(cap)가 벌통의 본체 꼭대기의 작은 [[구멍]] 위에 추가되었다.
68번째 줄:
=== 나무 구멍 벌통 ===
[[
[[미국]] 동부, 그중에서도 특히 남동부에서 구멍이 뚫린 나무는 [[20세기]]까지 벌통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벌통들은 "gums"라 불렸는데, 대부분 흑고무나무(Nyssa sylvatica)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ref>{{
속이 빈 나무들을 "벌 마당" 혹은 양봉장에 수직으로 세워놓고 사용했다.
때로 [[널빤지]] [[덮개]] 밑에 막대기나 교차된 막대를 놓아서 벌집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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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나무 [[구멍]]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멍 뚫린 나무 몸통은 과거 [[중부 유럽]]의 양봉가들이 널리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barć" 벌통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의 [[기후]]와 [[포식자]]들 ([[딱따구리]], [[곰]], [[솔담비]], [[숲겨울잠쥐]]) 로부터 보호했다.
벌꿀 수확은 벌 군집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보호용 [[나무]] 덮개를 제거한 후 짧은 시간 동안 [[연기]]로 벌들을 막는 방식이었다.<ref>{{
나무 구멍 벌통은 벌꿀 생산량이 비교적 떨어지는 꿀벌 종을 위해 [[양봉가]]들이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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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량의 벌꿀을 생산하는 꿀벌종(Apis mellifera nigra)에도 또한 나무 구멍 벌통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타 일반 양봉꿀과 나무 구멍 양봉을 구분지어 벌꿀의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의 Mont-Lozère 또한 현재까지 이 벌통을 사용하고 있다.<ref>{{
벌통의 길이는 다소 짧은 측면이 있고, 보통의 나무 구멍 벌통과는 달리 정해진 규격대로 인공적으로 [[구멍]]을 뚫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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