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30번째 줄:
[[900년]] [[마자르 족]]이 [[바이에른]]을 침공하여 황폐화시켰다. 그러나 후작 [[리우트폴트]]와 [[파사우]]의 주교 리샤르에 의해 격퇴되었다. [[901년]]에는 [[마자르 족]]이 [[케른텐]]을 침공하여 황폐화시켰다. [[904년]] 루트비히는 [[마자르 족]]의 지도자 [[쿠르산]](Kurszán)에게 사자를 보내 협상을 요청했지만, 쿠르산은 루트비히가 보낸 사자들을 살해하였다. 쿠르산 사후 [[906년]]과 [[907년]] [[마자르 족]]은 다시 [[작센]]으로 쳐들어와 황폐화시켰다.([[브라티슬라바 전투]]) 이는 후작 리우트폴트에게 [[바이에른]]에서 패한 데 대한 보복으로 리우트폴트를 비롯한 많은 귀족들을 사살했다. 이 전투에서 [[바이에른의 리우트폴트]], [[잘츠부르크]]의 주교 [[테오도마르]] 등을 잃었다. [[908년]]에는 튀링겐에 침략한 마자르 족에 의해 후작 [[부르하르트 폰 튀링겐]]과 [[뷔르츠부르크]] [[주교]] 루돌프 등을 일었다.
 
[[906년]] 친히 군사를 이끌고 [[작센]]을 침략한 마자르 족과 교전했다. [[907년]] 초 루트비히는 [[마자르 족]]이 국경지대를 넘어오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맞섰지만 [[프레센부르크 전투]]에서 병사를 잃고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그해 여름에도 마자르 족이 쳐들어와 직접 출정하였으나 [[907년]] [[7월 4일]] [[바이에른]]의 공작 리우트폴트와 대주교인 잘츠부르크의 테오트마르(Theotmar) 등을 잃고 말았다.
 
루트비히는 성장하면서 군권을 장악하고, 마자르족에 대한 군사원정을 벌였는데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907년]] 그가 군사 통제권을 쥐었을 때는 이미 에르네스부르크 등의 도시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909년]] [[작센]]과 [[튀링겐]]에 [[마자르 족]]이 나타나자 루트비히는 [[바이에른]]의 [[불쾌공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르눌프는 [[로트 강]]변에서 [[마자르 족]]과 싸워서 격퇴했고, [[910년]] 루트비히는 친히 [[동프랑크 왕국]]의 [[육군]]을 이끌고 [[아우구스부르크]] 근처에서 [[마자르 족]]을 격파했다. 이어 [[레흐 강]] 근처 [[레흐펠트 전투]]에서 [[마자르 족]]을 상대했지만, 루트비히의 군사가 패했다. 마자르 족은 다시 발길을 돌려 [[슈바벤]]과 [[프랑켄]]을 약탈한 뒤 [[라인 강]]을 넘어 [[부르고뉴]]까지 쳐들어가 황폐화시키고 약탈을 감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