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헌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37번째 줄:
원소에게 마찬가지로 조조에게도 역시 헌제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수단과 명분에 불과하였다. 조조가 헌제를 확실하게 휘어잡게 되자, 조조는 장양의 부하였던 [[동소]](董昭)의 조언을 받아들여 도읍을 자신의 근거지와 가까운 허(許)로 옮기어 궁을 짓고 허도(許都)로 이름을 고쳤다. 이때부터 헌제는 조조와 그 무리들에게 둘려쌓여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고, 조조의 요청이 있으면 재가만 해주는 신세가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여포에게 패해 조조에게 의지하러 허도에 왔을 때 그가 한실의 핏줄임을 알고 유황숙(劉皇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헌제는 유비에게 한가닥의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실제로 헌제와 유비는 조상이 한경제의 아들들이다 헌제는 경제의 아들인 정발왕의후손이고
 
유비는 경제의 일곱번쨰일곱 번째 아들인 중산정왕유승의 후손이다 유일하게 촌수는 멀지만 혈연관계로 묵여있었던 사람은 유비밖에 없었다 유비역시 헌제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지만
 
조조에게 토벌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