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헌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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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에게 마찬가지로 조조에게도 역시 헌제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수단과 명분에 불과하였다. 조조가 헌제를 확실하게 휘어잡게 되자, 조조는 장양의 부하였던 [[동소]](董昭)의 조언을 받아들여 도읍을 자신의 근거지와 가까운 허(許)로 옮기어 궁을 짓고 허도(許都)로 이름을 고쳤다. 이때부터 헌제는 조조와 그 무리들에게 둘려쌓여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고, 조조의 요청이 있으면 재가만 해주는 신세가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여포에게 패해 조조에게 의지하러 허도에 왔을 때 그가 한실의 핏줄임을 알고 유황숙(劉皇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헌제는 유비에게 한가닥의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실제로 헌제와 유비는 조상이 한경제의 아들들이다 헌제는 경제의 아들인 정발왕의후손이고
유비는 경제의
조조에게 토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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