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5번째 줄:
그 후 미국에 있던 김형욱은 1977년에 [[박동선 (1935년)|박동선]](朴東善, 1935~ )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두하여 박정희 정권의 비밀스런 사건들을 폭로하였다. 하지만 그에 멈추지 않은 채 [[김형욱]]은 곧이어 [[일본]]에서 회고록을 발표하자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당시 제8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 1926~1980)에게 [[김형욱]]을 없애라고 지시하였다.
 
==== 너무도 엇갈린엇갈려버린 상반성 증언 ====
그러나 다른 의견을 여담에 포함하자면, 1979년 당시 육군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全斗煥, 1931~ ) 당시 육군 소장이 1979년 10·26 사건 당시 김재규를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김형욱에 관한 말은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던 [[강신옥]](훗날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등도 같은 증언이었는데 [[김경재 (1942년)|김경재]](훗날 평화민주당 국회의원)가 쓴 김형욱 회고록에 의하면 박정희가 내린 암살 관련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