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호노리오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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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십자군은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비준되었고, 호노리오 3세는 1217년에 십자군 원정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 거대한 사업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교황과 추기경들은 3년 동안 십일조를 냈다. 그 밖의 성직자들은 20분의 1을 냈다. 이렇게 모인 돈이 상당한 액수였지만, 호노리오 3세가 계획한 십자군 원정을 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못했다.
 
1217년 4월 호노리오 3세는 [[쿠르트네이의 피에르 2세]]를 [[라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는 피에르 2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피에르 2세는 동방으로 길을 떠난 와중에 [[에페이로스 전제공국]]의 [[테오도로스 콤네노스 두카스]]에게 사로잡혀 감옥에서 삶을여생을 마쳤다.
 
호노리오 3세는 거룩한 땅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럽의 유일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과거 그의 제자였던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였다. 다른 많은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 2세 역시 1217년에 거룩한 땅으로 가겠다는 서약을 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막상 성지로 떠나는 것을 주저했고, 호노리오 3세는 그런 그에게 거듭 원정을 떠날 것을 촉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