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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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난은 제베대오의 둘째 아들로, 초기에는 형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야고보]]와 함께 가파르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더불어 어부로서 생활했다. 어느 날 [[게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손질하다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들은, 예수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와 삯군들을 남겨둔 채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마태 4,21-42).
 
하루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예수에게 예수제국 -<small>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예수가 [[혁명]]을 일으켜 예수제국을 세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small>{{출처|날짜=2014-03-14}}- 에서 자신들이 각각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가 그들에게 자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자신이 받을 고통의 세례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묻자 그들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는 자신의 잔을 나누어줄 수는 있지만 하늘 나라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미리 마련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줄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요한과십자가 야고보고난을 형제와받던 다를주님을 끝까지 없었던곁에서 다른지켰던 요한과 달리 오히려 사도들은 요한과 형제의야고보를 야심을경쟁자로 불쾌히인식하였기 여겼으며,때문에 예수는그문제로 서로 다투었다. 그래서 십자가 구원을 이루러 왔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여 제자들이 섬김을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마태 20,27-28)
또한 두 형제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감히 주제넘게도 주님을사마리아인들이 영접하지예루살렘에 않은간다고 불친절한하여 [[사마리아주님을 (지역)|사마리아]]영접하자 사람들을그들을 보고향해 불같이 화를 내며 예수께 저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예수는 나는 사람을 구원하러 온 것이지, 지금 당장 멸하려 온 것은 아니라면서 잠시 거부하셨다제안을 거부하시고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완전한 심판을 이루시기까지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구원하시기구원하시기를 위하기바라시기 때문이었다때문이며 당장 사마리안 인들을 멸망하도록 원하는 것은 오직 사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이신 주님을 모독하는 성령모독은 어차피 용서받지 못할 죄이기 때문에 그 심판의 요청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 당시에는 적절치 않은 것었던 것이다.(루카 9,54)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아울러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마르코 복음서|마르]] 3,17), 요한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는 기적, 타볼 산에서의 [[예수의 변모|변모]],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이 예수의 중요한 행적마다 수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고난을 감수하고 열정적인데 이는 진정한 사랑이란 조건없이 상대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와 거듭난 이후 12사도를 보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고난까지 감수하는 사랑이다.그렇기때문에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사랑이신 그분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들은 모두 가짜 신자들인 것이며 아울러 범죄와 거짓을 보고 묵인함으로써 그것들에 협력하는 자들은 회칠한 무덤이자 바리새인이자 사탄의 자녀들로서 신자로 위장하는 뱀의 새끼들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매달렸을 임종하기 직전에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고난의 때에 주 예수가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먼저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말하며,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이때부터 요한은 임종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곁에서 모시고 섬겼다(요한 19,26-27).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예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뒤따라오는 베드로를 기다려서 그가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제야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차례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행전|사도]] 8,14)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로]]는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갈라]] 2,9). 전승에 의하면 44년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 곳의 일곱 교회, 즉 [[에페소스]],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및 라오디게이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은 군병들에게 붙잡혀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요한묵시록]]을 저술하다가,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받아 에페소스로 귀환하여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신을 저술하였다. 그때 그는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어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출처|날짜=2014-03-14}}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