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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국의 황제|명나라의 제3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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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성조 영락제'''(明成祖 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나라|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그의 [[휘]]는 '''체'''(棣)이고, [[명나라|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명나라)|효자고황후 마씨]]이다. 영락제는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대외 확장 정책을 펼쳐 주변국을 굴복시켜 조공질서를 명확히 하였다. 이에 [[베트남]]이 명에 정복당하여 한때 중국 영토로 편입되기도 하였다.
 
홍무제 시기에는 연왕에 봉(封)해졌다. 홍무제 사후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 정책에 반발하여 '정난의 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이후 [[베이징]]으로의 수도 천도를 추진하였다. 그는 운하인 회통하를 완공시켜 남북 물자 교류의 교두보를 확보한 후 [[1421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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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년]] [[홍무제]]가 죽었다. 뒤이어 즉위한 [[건문제]]는 자신의 숙부들을 견제하고자 한다. 건문제의 할아버지인 홍무제 연간에 황실을 보호할 울타리로써 홍무제가 자신의 아들들을 변경의 왕으로 봉하였다. 이러한 변경의 군왕세력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건문제에게 큰 부담이 되었으며, 따라서 건문제는 황제로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해서 이른바 '삭번 정책'을 펼쳤다. 이에 당시 홍무제의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이며 세력이 강대한 연왕 [[영락제|주체]]가 중심이 되어 [[1399년]] 7월 거병하니 이를 '[[정난의 변]]'이라고 한다.
 
[[1402년]] 6월 주체는 수도 [[난징]]을 점령하고 건문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가 바로 명조(明朝) 제3대 황제 성조 영락제(永樂帝)이다. 영락제는 즉위 이후 얼마간 난징에서 머물다가 [[1421년]] 자신의 정치 기반인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였다. 이로인해 다시 중국의 정치 중심지는 베이징이 되었다. 영락제의 베이징 천도는 그가 북방의 군사력을 온전히 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강남지방의 경제력을 화북지방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통일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방에서 건국된 명 왕조가 북방을 국정 운영의 중심으로 삼음으로써 명실상부한 통일 정권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 치세 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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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 바깥외부 고리링크 ==
{{위키공용|Yongle Emperor}}
*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808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영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