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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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르 족]]과의 휴전을 얻어낸 직후 동쪽 국경 지대에 있던 [[슬라브 족]]이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슬라브 족의 하나인 폴라비안 슬라브 족(Polabian Slavs)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928년]] 겨울 [[슬라브]]계의 다른 부족인 헤벨리(Hevelli) 족이 차지하고 있던 [[브란덴부르크]]를 탈환하였다. 이후 골로마츠(Glomacze) 땅과 [[엘베 강]]변까지 점령하고 슬라브 부족을 몰아냈고, 알브레히츠부르크와 마이센 성을 점령하였다.
 
[[928년]] 그는 브란덴부르크의 헤벨리족과 마이센의 달레민치족을 정복하고 독일에 복속시켰다. [[928년]] 겨울, [[슬라브 족]]이 [[독일]] 영역을 넘어와 [[브란덴부르크]]를 약탈하였다. 이들은 [[글로마츠]]까지 침공하여 성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아이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작센 족]] 역사학자 비두킨트에 의하면 이때 하인리히는 위기에 직면했다 한다. 동시에 [[보헤미아]]에서도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일단 하인리히는 바이에른의 아르눌프 등의 지원으로 퇴각하여 [[929년]] [[프라하]]를 공략, [[보헤미아의 벤첼 1세]]를 굴복시키고 공물을 바칠 것을 약속받았다. 그러나그해 9월 28일 [[보헤미아의 벤첼 1세]]는 죽고, 벤첼이 죽자 바로 그의 형제 보로슬라프가 보헤미아족의 지도자 자리를 계승했다. 하인리히는 보로슬라프를 강제로 끌고 가 950년 여름까지 독일 군에 복무하게 했다.
 
슬라브계 부족인 레다리 족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살해하고 새 지도자를 선출한 뒤, 작센 안할트의 발스리빈을 공격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백작 베른하르트와 테이마르(Thietmar)와 군사를 보내 레다리 족과 싸워 929년 9월 4일 레젠 요새에서 슬라브 족을 최종 격파했다. [[슬라브 족]]을 최종적으로 격퇴한 뒤 하인리히는 슬라브 족에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슬라브 족은 이교도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거절한다.
 
한편 [[슬라브족]]의 침공에 대해 그는 932년과 934년 친히 군사를 이끌고 [[엘베 강]]을 건너 [[슬라브 족]]의 본거지인 동부지역 영토 밖을 진격하여 슬라브족들을 격파하고 영토에 보루를 설치하였다. 그는 영토 밖 동부지역의 이민족인 슬라브인, 마자르인의 침략과 북방의 데인족의 침입을 모두 성공적으로 격퇴하여 다른 제후들로부터 인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