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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년]] 부활절에 하인리히 1세는 [[풀다 수도원]]을 방문했다. 여기에는 콘라트 1세가 매장된 곳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독일인 왕 루트비히와 콘라트 1세의 후계자임을 선언했다.
 
하인리히는 통치권을 행사하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그는 스스로도 왕국을 왕국이 아닌 공국과 제후들의 연맹체 또는 연합체 정도로 인식했다. 그는 재위기간 중 귀족들과 갈등하였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후임자들이 시도한 것처럼, [[샤를마뉴 대제]]처럼 관료를 파견하여 지방, 제후들을 통제하고 제국을 관리하려 하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프랑켄 공국]], [[슈바벤 공국]], [[바이에른 공국]] 등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승인하였다. 그는 종교적으로는 수도원과 교회의 설립을 장려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수도원, 교회의 공적 기능 행사를 억제하려 하였다.
 
=== 이민족과의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