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풀코: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바깥 고리 → 외부 링크) |
잔글 →역사 |
||
37번째 줄:
==역사==
[[8세기]]까지, 아카풀코 일대에 소규모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일대는 처음에는 [[올멕]] 족들에 의해, 스페인 지배 이전에는 다른 여러 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아카풀코 만에 플라야 라르가(Playa Larga)와 엘 귀타론(El Guitarrón)으로 알려진 언덕에 두 올멕인들의 정착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올멕 사람들의 영향으로 작게 흩어져 있던 마을이 더 큰 집단이 되어 제사의 중심지를 건설했다. 후에는 테오티우아칸의 영향으로 마을에서 [[쿠에르나바카]]나 [[칠판싱고]]를 통해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마야인의 영향이 [[테우안테펙 지협]]에서 [[
[[아카풀코 만]]이 어떻게 유럽인에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스페인 정복 2년 후 [[에르난 코르테스]]가 금을 찾기 위해 원정대를 보냈다는 주장이다. 1523년 이후 원정대는 이 지역을 정복했고, 코르테즈에 의해 사베드라 세론(Saavedra Cerón)이 일대에 거주지를 설립하는 승인을 받았다. 또 다른 학설은 산티아고 게바라(Santiago Guevara)를 선장으로 하는 〈엘 테파체 산티아고 호〉(El Tepache Santiago)라는 이름의 소형 선박에 의해 1526년 12월 13일에 발견되었다는 설이다. 최초의 엔코멘데로는 1525년 처음으로 현대의 아카풀코 지자체의 일부인 카카우아테펙(Cacahuatepec)에 설립되었다. 1531년, 후안 로드리게스 데 비야푸에르테(Juan Rodriguez de Villafuerte) 같은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1530년대]] 초, 코르테즈는 아카풀코 주요 항구를 설립했고, 1531년경에 멕시코시티와 항구 사이의 첫 번째 주요 도로를 건설했다. 마르라는 이름의 부두가 부루쟈 포인트와 다이아몬드 포인트 사이에 건설되었다. 그후 곧, 이 지역에 마을(알카디아, Alcadia)이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