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송: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Mouthum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Mouthum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본명 = 김송규
|출생일 = [[1910년]] [[12월]]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일제시대}} [[평안남도]] [[개천군|개천]]
|사망일 = [[1950년]]? (41세?)
|사망지 = {{국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68번째 줄:
 
작곡자로서는 〈연락선은 떠난다〉, 〈오빠는 풍각쟁이〉, 〈역마차〉, 〈울어라 문풍지〉, 〈화류춘몽〉, 〈[[선창 (노래)|선창]]〉, 〈울어라 은방울〉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장세정]], [[박향림]], [[이난영]], [[고운봉]], [[이화자]] 등 당대의 인기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이다. 서양 대중음악에 능통하여 재즈나 블루스, 스윙과 같은 그 시기에 흔치 않은 음악 장르를 설렵했다. 김해송은 뛰어난 연주자로서 무대 연출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무대 활동의 특성상 자취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이난영과 [[남인수]]가 함께 부른 〈이천오백만 감격〉과 같은 친일 가요 작곡 사실이 알려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 [[KPK악극단]]을 결성해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오페라]]를 원용하여 음악의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뮤지컬 형식을 시도함으로써 전위적이고 다채로운 무대 예술을 선보였고, [[대중음악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 《투란도트》(1948), 《카르멘환상곡》(1949), 《로미오와 줄리엣》(1950) 등이 있다.
줄 135 ⟶ 133:
[[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
[[분류:숭실대학교 동문]]
[[분류:일제 강점기의일제시대기의 작곡가]]
[[분류:도요 대학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