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스터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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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Kim Sisters with Dean Martin.jpg|thumb|300px|김시스터즈(이민자김민자, 김애자, 김숙자)와 [[딘 마틴]]]]
'''김시스터즈'''는 [[이난영]]과 [[김해송]]의 세 자매가 어린시절인 [[1953년]]에 결성한 [[대한민국]]의 여성 보컬그룹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178457|제목='저고리 시스터'가 원조? 80년 걸그룹의 역사|저자1=공진구(취재)|저자2=박선수(편집)|날짜=2012-05-05|출판사=SBS뉴스|확인일자=2013-03-20}}</ref><ref name="김시스터즈">{{뉴스 인용|url=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205/wk20120504180130121180.htm|제목=1939년 '저고리시스터'가 시초|저자=이상준|날짜=2012-05-04|출판사=주간한국|확인일자=2013-03-20}}</ref>
 
== 활동 ==
[[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김숙자ㆍ김애자)과 [[이난영]]의 오빠 작곡가 [[이봉룡]]의 딸(이민자김민자)<ref>후에 김씨로 바꾸었다.</ref>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노래와 함께 춤까지 췄는데 미8군 무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김시스터즈는 [[1959년]] 아시아 걸그룹으론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다고 당시 기사가 전하고 있다. 참고로 최초 미국진출 한국 여가수는 옥두옥이다.<ref>최초 미국진출 한국 여가수는 옥두옥. 1956년 옥두옥이 RCA Victor 레코드사에서 미국 데뷔 앨범을 냈다.</ref>
 
김시스터즈는 [[1967년]] 50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 라스베이거스에서 유명한 고액 납세자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76달러였던 시절 김시스터즈가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받은 주급은 무려 1만 5,000달러였다고 한다.<ref name="김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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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꿈 :Try To Remeber"이 2015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과 제12회 EBS다큐멘터리페스티발에서 상영되었는데 김시스터즈에 관한 다큐멘터리로서 이난영에 의해 김시스터즈가 만들어진 배경과 연습, 음악가 집안에 따른 천부적인 음악적인 감성,공연감, 미국 라스베가스 등을 건너가는 과정, 1년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된 과정을 김(이)민자의 이야기로 펼쳐지며 김숙자의 인터뷰 등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증언으로 김시스터즈의 활약상을 영화전반에 보여준다.
 
김애자는 1987년 4월 18일 [[라스베이거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고, 김민자는 [[헝가리]] 출신 재즈 연주자와 결혼해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3&aid=0007726660 다큐영화 '다방의 푸른 꿈'…한국 최초 걸그룹의 미국 진출기] 뉴시스. 2017년 01월 21일</ref>
 
== 에피소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