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5번째 줄:
 
프랑스의 다른 왕비들과 비교하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쓴 돈은 그다지 많은 수준이 아니었다. [[루이 16세]]가 검소했던 탓에 이들 부부는 왕실 예산 중 겨우 1/10 정도만 사용했을 뿐이었지만, 이미 왕실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다. 희고 고운 피부와 탐스러운 머리, 늘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던 마리는 복장과 머리 손질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프랑스 패션을 주도하고 유행을 선도했다. 더구나 당시 프랑스 왕실이 왕비가 옷을 갈아입는 것과 화장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공개하던 탓에 [[베르사유 궁전]]에는 왕비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매일 북새통을 이루었고, 적국 출신의 왕비로 본래 곱지 못한 시선을 받던 처지라 그녀에 대한 소문은 좋지 못하게 퍼져나갔다. 그녀는 ‘적자부인’이라는 비난 어린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모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매춘부 출신 후궁 [[뒤바리 백작 부인]]을 심히 경멸하였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를 염려하여 총리 [[카우니츠]] [[백작]]과 대사 [[메르시]] [[백작]] 등을 통해 그들의 훈령, 건의 형식으로 앙투아네트에게 조언지만 그는 거절하였다.
 
=== 프랑스 왕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