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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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도에 독립하여 대성기획(후에 [[DSP 미디어]]로 명칭변경)을 설립했다. 이후 혼성그룹 [[잼 (음악 그룹)|ZAM]]을 제작해 큰 인기를 모았고, [[이본]], [[오현경]], [[이승현]], [[이아현]], [[박소현]] 등을 키워내기도 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800209126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8&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673&publishType=00010][http://www.hyoleeworld.com/bbs/view.php?id=community_news&page=11&sn1=&divpage=2&sn=off&ss=on&sc=on&select_arrange=subject&desc=desc&no=7181][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4031300571001][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0001382][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24/2015062403006.html]
 
90년대 중후반 및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젝스키스]], [[핑클]], [[클릭비]], 솔로 [[이효리]], [[SS501]] 등 스타 아이돌들을 배출하여 [[SM 엔터테인먼트]]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아이돌 산업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2/np162ii020.html] 그리고 [[카라 (음악 그룹)|카라]]를 제작하여 큰 인기를 모았고, 카라의 일본 진출을 성사시킨바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2&aid=0001943427] 또한 [[레인보우 (음악 그룹)|레인보우]]를 기획하여 데뷔시켰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005820]
 
그러나 2010년 3월 지인과 술자리를 갖고 돌아가는 길에 뇌출혈로 쓰러졌고 현재까지도 병상에 누워있다. 이후 대표이사가 교체된 [[DSP 미디어]]는 예전만큼의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65402155494359010]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DSP 미디어]]가 성공한데에는 설립자인 이호연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DSP 설립 초부터 줄곧 기업의 경영·기획 등을 비롯해 가수의 앨범 제작까지 손수 돌보며 기업의 성장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제작자로 유명세를 탄 후 데뷔시키는 가수마다 정상에 올려 ‘스타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큰 부침 없이 기업의 덩치를 키워내 경영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9044487y] 추진력과 스태프 관리에 있어 가요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호연 대표가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대성기획 및 DSP는 이수만 사장의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사실상 국내 양대 가요 기획사로 군림했다.[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1408535756204&type=1&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