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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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 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직접고용되어 사용자의 딸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는 폴란드 민족문제를 고민하던 사용자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년감화원 사감으로 취직하여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마리는 둘째 언니 브로니스와바와 형부 카지미에시 드우스키(Kazimierz Dłuski) 부부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언니 부부의 돌봄을 받으며 유학하였다.
 
브로니스와바와 마리가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폴란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는 [[계몽주의]]자였다면, 형부 카지미에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없이는 민중 해방이 없다는 냉철한 현실 이해를 주장한 [[사회주의자]]였다.<ref>내셔널 지오그래픽 세계위인전 (전15권) 푸름이닷컴</ref>
 
[[1891년]] 파리의[[파리]]의 [[소르본 대학에대학교]]에 입학하여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 [[라듐]]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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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년 ~ 1906년)는 [[1898년]]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pitchblende, 역청우라늄석)에서 염화바륨에 소량 섞여있는 형태로 염화라듐을 처음 분리∙발견하였고 [[1902년]] 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하여 0.1g의 순수한 염화라듐을 얻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분해시켜 금속 라듐을 얻었다.<ref>박준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4&contents_id=7058 라듐(Ra)]. 네이버캐스트. 2011년 12월 14일.</ref>
 
마리 퀴리가 살던 시대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주장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느 화장품에 라듐이 들어간다고 쓰어져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완판이모두 되었고팔리었고 굉장히 인기가 있던 제품이었다.
 
=== 교수 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