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로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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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조국을 위한 그의 헌신으로 로렌스는 1957년 미국 원자 에너지 위원회로부터 [[엔리코 페르미 상]]을 수상하고 1958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로부터 명망 있는 실바너스 테이어 상(국가 이익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의 첫 번째 수상인이 되었다.
 
1958년 6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로런스에게 [[스위스]] [[제네바]]로 [[소련]]과 핵 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을 협상하는 것을 도우러 가줄 것을 요청한다. 그의 심한 만성 대장염의 갑작스러운 재발에도 불구하고, 로런스는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는 제네바에 있을 때 악화되었고, [[스탠퍼드 대학교]]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다. 로런스는 한 달 후, 57세의58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지 23일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이사회는 대학교의 핵 연구 시설을 로런스의 이름을 따서 다시 짓기로 했다. 하나는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이고, 다른 하나는 로런스 버클리 연구실이다. 어니스트 올랜도 로런스 상은 1959년 그를 기리며 설립되었다. 1961년 LBNL에서 발견된 화학 원소 번호 103번 ‘[[로렌슘]]’은 그의 업적을 기리며 붙여졌다. 1968년 ‘로런스 과학관’이 그의 일생동안 대중의 과학에 대한 흥미, 특히 취학 아동에 대해 과학적 흥미를 끌어 올리는 것에 열정적으로 지원했던 어니스트 로런스의 업적을 기리며 설립되었다. 그 박물관은 로런스의 일생에 대한 영구적인 전시를 특색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