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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wenty-four_eyes12s3200.jpg|thumb|375px|일본의 어느 학교 음악실에 비치된 풍금.]]
'''하모늄'''({{llang|de|Harmonium}}, {{llang|en|pump organ; reed organ; American organ}}) 또는 '''풍금'''(風琴)은 소형 [[오르간]]을 닮은 악기로 가정용으로 보급되었을 뿐 아니라, 작은 교회의 예배당에서 대형 오르간 대신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우스 오르간]]과 먼 친척인 하모늄은 키보드로 조정하는 일련의 프리 리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발로 밟는 압축 풀무로 바람을 넣어 소리를 낸다.<ref name=":1">{{서적 인용|url=|제목=세계의 악기 백과 사전 : 악기의 기원과 발전|성=Max Wade-Matthews|이름=|날짜=2004|출판사=교학사|쪽=236-237|isbn=|확인날짜=|번역자=이용일, 나재용, 양은주}}</ref>
'''풍금'''(風琴, {{llang|de|Harmonium}}, {{llang|en|pump organ; reed organ; American organ}})은 [[오르간]]의 일종으로서, 파이프 대신 발로 밟는 [[풀무]]와 [[리드 (악기)|리드]]를 이용한 것이다. 집채만한 [[파이프오르간]]과 비교하여, 업라이트 피아노 정도의 작은 크기로 만들 수 있으며 19세기에 영세한 작은 교회 및 가정집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역사 ==
기계장치로 송풍되고 [[리드]]에 의하여 발음하는 악기를 악기학상으로 리드 오르간족(族)이라 총칭한다. 본래는 [[아코디언]]이나 [[반도네온]]도 이에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상자형의 케이스와 [[피아노]]식의 건반을 가진 것을 가리키며, 이 항에서도 이 리드 오르간을 다룬다. 19세기 중엽에 완성된 새로운 악기로 [[파이프 오르간]]을 닮은 보다 간편하고 값이 싸고 소형의 악기로서 유행하였다. 기본적인 구조는 둘다 족답식(足踏式)인 [[풀무]]로 압축공기를 만들며,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에 대신하는 금속제의 리드를 울리는 것으로 그 음넓이는 표준악기로 다음에서 다4음까지인 5옥타브, 또한 음빛깔을 변화시키는 스톱을 가지고 있다. 음악적인 표현력은 하모늄이 풍부하며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아메리카 오르간은 파리의 하모늄 제작자 알렉산더에 의하여 보다 간이한 악기로 발명되어 그 뒤 아메리카에서 많이 제조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주법도 매우 간단하나 그 반면 음빛깔의 폭이나 변화가 적어 표현력에선 떨어진다. 현재 일반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오르간은 전력 모터로 압축공기를 만들며 스톱이 없다.
하모늄은 1810년경 [[가브리엘 그레니에]]가 고안한 프리 리드 건반 악기인 [[오르그 엑스프레시프]]에서 발전되었다. 그레니에 악기의 스톱 기능은 2개의 페달로 조작하는 풀무로 공기가 공급되었다. 익스프레션은 페달을 이용해 풀무와 공기 저장기를 연결하는 스톱으로 오르간 역사상 처음으로 연속적인 강약 변화가 가능해졌다. 1834년 프랑스의 유명한 오르간 제작자인 [[아리스티드 카벨레콜]]이 개량한 것이 파리 박람회에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소형으로 [[스퀘어 피아노]]와 같은 형태를 한 카벨레콜의 악기는 [[포이킬로르그]]라고 불리워졌고, 학 옥타브 반의 음역을 갖고 있었다. 1843년 그레니에의 제자 [[테오도르아킬레 뮐러]]가 사각형 상자에 접혀 들어갈 수 있는 휴대용 하모늄으로 특허 등록을 했다.<ref name=":1" />
 
하모늄을 제작하고 완성한 선구자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여러가지 시도는 바이에른에서 이루어졌다. 1815년 바이에른의 [[베른하르트 에센바흐]]가 익스프레션, 즉 연속적인 강약 변화의 표현이 가능한 프리 리드의 건반 악기를 고안하여, [[에올리네]]라고 이름을 붙였다. 1842년 파리의 제작자 드뱅이 특허 등록한 모델이 판매되자, 하모늄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였다. 드뱅의 하모늄에는 두께와 폭이 다른 리드와 연결된 세 옥타브의 건반이 부착되었다. 새롭게 추가된 특징의 하나는 각 건반이 풀무로부터의 송풍량을 조절하는 벨브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처음으로 다른 음색을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1848년에 드뱅은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하여 개량했는데, 그중 하나가 교체 건반, 즉 악보 그대로 연주하면서 원하는 만큼 음정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장치였다. 1854년 [[빅토르 뮈스텔]]이 무릎 레버로 조작하는 분할식 익스프레션 스톱을 덧붙였다.<ref name=":1" />
한국에 풍금이 들어온 것은 1896년 무렵 선교사에 의한 것으로 보는데, 《한국양악100년사》에서는 증언을 토대로 그것을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909년 4월 27일자 《황성신문》의 기사에는 관립고등학교에서 풍금을 사용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풍금 연주를 관람시켰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모늄은 일정한 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음향 실험이나 여러가지 조율법을 실험하기에 좋았다. 이러한 실험용 하모늄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1889년 베를린의 [[쇼에 탕카]]가 설계하고 [[요한 케비치]]가 제작한 것이다. 탕카의 하모늄은 극히 정밀하여 한 옥타브에 20키 이상의 음이 균등하게 조율되었지만, 이것조차도 방케의 실험용 하모늄과 비교해 보면 아이들의 장난감과 다름없었다. 방케의 하모늄은 한 옥타브로 53개의 미분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9세기 중엽 하모늄은 찬송가의 반주용으로 선교사에 의해 인도에 소개되었다. 1920년 이래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소형 구자라트용 하모늄을 만들어 왔는데, 구자라트에 있는 팔리타나가 리드 악기 제조의 중심지였다. 하모늄은 널리 보급되어 많은 가정에서 한 대씩 가지고 있었다. 하모늄은 기도 노래 반주용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전통적인 인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없이 환멸감을 느꼈다. 하모늄은 음높이가 일정하므로 자유롭게 억양을 붙이는 인도의 성악, 기악곡에는 맞지 않았고, 하모늄의 도입으로 인도의 [[바조나 스루티]]나 [[백파이프]] 등의 민속악기는 모습을 감추었다.<ref name=":1" />
또한 이 무렵 김인식 (金仁湜)·김영환(金永煥) 등이 선교사한테 풍금을 배워 각종 음악회에서 연주하였는데, 이들이 한국 최초의 풍금연주가로 기록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풍금은 대략 1896년 무렵 선교사들을 통하여 들어와, 1910년 이전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한국의 음악문화과정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각주 ==
1910년 이후부터는 각종 학교와 교회에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 그리고 기독교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풍금은 서양음악 보급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풍금이 한국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첫째 음악교육의 도구로 사용되어 서양음악의 교육과 보급에 일조를 하였다는 점, 둘째 찬송가의 반주 악기로서 일반인들로 하여금 서양식을 음체험하게 하였다는 점, 셋째 피아노와 함께 한국의 전통음악적 음 감각을 서양의 평균율로 변질시켰다는 점, 넷째 서양음악의 원형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 참고 자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