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오딘지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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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불교 위기}}
{{본문|싸로이 사찰 공습}}
응오딘지엠은 70 ~ 90%의 베트남인들이 믿는 [[불교]]를 [[차별]]하였다. 그는 공공 서비스와 국방에 걸쳐 오로지 [[가톨릭]] 교인들에 대해서만 토지 할당, 사업 호의, [[세금]] 감면 정책 등을 펼쳤으며, [[베트콩]] [[게릴라]]를 격퇴하기 위해 마을별로 [[총기]]를 배포할 때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는 경우 배급하지 않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군대]]의 포격으로 불교 절들이 파괴, 철거되고, 몇몇 불교 마을 역시 철거되었다.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남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토지 개혁]]에서도 면제되었다. 공산주의 봉기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수많은 불교도들을 탄압 투옥, 처형하자 미국 내 여론은 악화되었고 미국은 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다.
 
[[1963년]] 남베트남 정권과 불교간의 관계는 당연히 최악으로 치달았다.[[1963년]] 5월에 응오딘지엠의 형이 쿠양빈의 [[대주교]]로 임명되자 [[석가탄신일]]을 금지했고 [[승려]]들에 대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이에 [[틱꽝득]]승려가 분신으로써 불교 탄압에 항의하는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