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신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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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 신성용(申成用)
| 중시조 =
| 집성촌 = [[충청남도경상북도]] [[공주시고령군]]<br />[[충청북도]] [[청주시운수면]]<br />[[경기도전라남도]] [[평택시고흥군]] <br/> [[전라남도]] [[여수시]]<br />[[전라남도전라북도]] [[고흥군남원시]]<br />[[경상북도충청북도]] [[고령군청주시]] [[가덕면]]
| 인물 = [[신덕린]], [[신장 (조선)|신장]], [[신숙주]], [[신면]], [[신정 (1442년)|신정]], [[신용개]], [[신공제]], [[신익상]], [[신경준]], [[신한평]], [[신윤복]], [[신홍식]], [[신창휴]], [[신규식]], [[신채호]], [[신성모]], [[신인식]], [[신석초]], [[신희택]], [[신계륜]], [[신각수]], [[신문식]], [[신동근]]
| 년도 = 2015
| 인구 = 129,7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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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본래 [[신라]] 공족(公族)의 후예로 [[고려]]에서 지방 향리인 호장이 되었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에 올라 그 후손들은 누대로 정착 세거해 온 고령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다.
 
신성용의 5세손 [[신덕린]](申德隣)이 고려 말에 좌사의대부와 예조와 공조판서 판서에 이르렀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공조참의를 역임한 아들 [[신포시]](申包翅)를 데리고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키다가 다시 [[광주광역시|전라도 광주]](光州)의 [[서석산]]으로 옮겨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신포시]](申包翅)의 아들 [[신장 (조선)|신장]](申檣), [[신평 (조선)|신평]](申枰), [[신제 (조선)|신제]](申梯)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맏아들 신장(申檣)은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올라 남산지곡을 지었으며, 오랫동안 대제학에 있었고, 둘째 아들 신평(申枰)은 사간원의 정언을 역임했고, 막내 신제(申梯)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신장 (조선)|신장]](申檣)의 아들 신맹주(申孟舟), 신중주(申仲舟), [[신숙주]](申叔舟), 신송주(申松舟), 신말주(申末舟) 5형제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