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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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은 서부지방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감자역병 HERB-1 바이러스가 1844 년에 대서양을 가로 질러 갔다. 그 효과는 즉각 적이고도 치명적이었다. 1 년 안에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의 감자작물이 영향을 받았으며, 1845년 말까지 아일랜드의 1/3에서 1/2 정도의 밭이 사라졌다. 그 해의 수확량의 4분의 3이 파괴되고, 다음 해에도 파괴가 계속되었다.
 
=== 영국의 외면정책실패 ===
영국은 대기근이 발생하자 긴급구호 활동을 하였으나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갔다. 곡물의 긴습수입이 영국에서 있었으나, 이를 식량으로 처리하는 아일랜드 공장시설 부족으로 사망의 확산을 막지 못하였다. 또한 영국 지주들이 아일랜드 소작농들이 더이상 집세를 낼 수 없자 그들을 내쫒기도 했으며,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건설된 일련의 작업장들과 시설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전염병과 사망의 불모지가 되곤 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당시 아일랜드 섬을 지배하고 있던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은 대기근이 아일랜드 [[민중]]들의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는 [[영국인]] 지주들의 지나친 [[착취]]때문인데도 하느님의 뜻이라느니, 아일랜드인들을 더 풍유롭게 할 디딤돌이라느니 하면서 외면하였다. 심지어는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 사람들의 탓으로까지 돌렸다. 게다가 [[1848년]]에는 [[곡물법]]을 폐지시키고 밀 수입을 자유화하였다. 그리곤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본국으로 보냈다. 영국인 대지주들은 아일랜드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자 그들을 강제로 내쫓았고 쫓겨난 그들은 벨파스트에 있는 빈민구제기관까지 걸어가야했다. 전 국토에서 빈민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아사하거나 전염병으로 인해 죽었다.
 
=== 일부 인도주의 지식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