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 작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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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는 김일성에게 "인천을 조심하라"고 전문을 보내 서해안 방어 사령부를 신설하고 제18사단과 해군과 공군에서 차출한 육전대 병력 등으로 여러 방어용 신규 부대를 편성하는 한편 월미도에 해군 인원들로 구성된 방어진지를 만드는 등의 준비를 했으나 막을 수는 없었다.
 
== 상륙 작전의 진행 과정 ==
작전의 제 1단계는 상륙 본대의 상륙 개시 직전에 수행하는 사전 정보 수집, 교란 작전, 각종 준비 작전 및 선견침투 작전이었다. 정보 수집 작전엔 해군 정보요원들의 엑스레이 작전, 교란 작전엔 위에도 언급된 학도병들의 장사 상륙 작전, 준비 작전과 선견 작전엔 미 해군 UDT의 수중 장애물 제거 작전과, [[KLO]] 부대원 및 한/미의 해군/육군 장교들로 구성된 특별작전팀이 수행한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이 대표적이다.
 
드디어 9월 15일, 작전 개시일에 함정 206척, 7만여 명을 동원하여 [[영흥도]] 근처에 집결하여, 본격적인 상륙이 시작되었다.
 
작전의 제 2단계는 [[월미도]]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미 해병대의 제5연대 예하 제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하였다. 월미도는 2시간만에 완전히 미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미군은 부상 7명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조선 인민군|인민군]]은 108명이 전사, 106명이 포로로 잡혔고, 네이팜탄 투하 및 기총소사로 민간인의 피해가 컸다.
 
3단계는3단계에는 [[제1해병사단 (미국)|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제1연대와 제5연대가 각각 인천 남동부의 블루 비취비치(Blue Beach)와 인천항의 레드 비취비치(Red Beach)에 상륙하여 해안지역을 장악하였다.
 
제 4단계는 미 해병대 1사단의 나머지 병력과 [[제7보병사단 (미국)|미 육군 제7보병사단]],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국군]]의 해병대 제1연대와 육군 제17연대의 상륙 및 인천연합군의 내륙 진격으로 이어졌다.
 
[[18 사단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인민군 제18사단]]에서 급조 편성한 인천의 허술한 북한 경비 병력은 거세게 밀려오는 연합군의 파상 공세에 대항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곧바로 붕괴되었다. 그리하여 연합군은 [[조선 인민군]]의 주력이 규합하여 대항할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버리며 [[인천]] 장악에 쉽게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