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 갈레아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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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아니는 버몬트주 배리의 채석장에서 석공으로 살아가는 이탈리아 공동체에 이끌린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배리의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공동체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갈레아니는 지역 아나키스트 회의를 열었고, 겁쟁이 사회주의자들은 비판하며 불과 같이 연설했고, 계속해서 에세이와 논문을 써갔다. 이후 미국에서 행위의 프로파간다의 가장 강력한 지지를 표하는 아나키스트 신문인 크로나카 소베르시바 (Cronaca Sovversiva, 파괴적인 연대기)의 창립자이자 편집자가 되었고, 이것은 배리에서 출판되어 전국으로 배송되었다.<ref name="Galleani, Luigi 1914"/> 갈레아니는 미정부가 선동금지법(Sedition Act of 1918)을 통해 이를 폐간할때 까지 15년동안 아나키스트 신문을 출판했다. 크로나카 소베르시바의 각 호는 일반적으로 8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 신문의 가입자는 50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신문은 여러 급진적인 주제에 대한 견해를 표했고, 이것에는 [[무신론|신의 존재]]나 [[자유연애]] 그리고 현대와 역사적 국가의 폭정에대한 비판, 게다가 지나치게 수동적인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되었다. 신문에는 종종 사업가나 “자본가의 스파이”, ‘’파업 방해자”, 그리고 “인민의 적”으로 분류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주소와 신상정보의 목록이 포함되었다. 갈레아니의 이름으로 출판된 La Fine dell'anarchismo? (The End of Anarchism?) 같은 책들은 “크로나카 소베르시바”의 에세이에서 발췌한 것들이였다.
 
크로나카 소베르시바에서 갈레아니는 그의 직접행동과 국가에 대한 무장 저항에 대한 이론을 설명했다. 그는 뉴저지주 패터슨의 아나키스트이자 [[움베르토 1세]]를 암살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직접행동의 또 다른 제자인 [[가에타노 브레시]]의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갈레아니 사후 출판된 작품인 “Aneliti e Singulti: Medaglioni”은 크로나카 소베르시바에서 발췌한 그의 글의 모음집 이였다.
 
이후 크로니카 소베르시바는 La Salute è in voi! (Health is in You!)라는 25 센트의 소책자에 대한 광고를 게제했고, 여기에는 프롤레타리아 가정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1905년에 처음 출판된 소책자의 머리말에는 파괴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을 제시하지 않고 폭력을 옹호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있었다.<ref name="AVR"/> Health Is In You!는 명백하게 폭탄 제조 메뉴얼 이었으며, [[니트로글리세린]] 제조를 위한 화학식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갈레아니 친구이자 폭발물 전문가였던 에토레 몰리나리(Ettore Molinari) 교수에 의해 편집되었다.<ref name="AVR"/> 이 메뉴얼은 뉴욕 폭탄처리반에 의해 정확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분류 되었지만, 갈레아니가 몰리나리의 글리세린 화학식을 옮기는데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조기폭발하는 문제가 있었다. 갈레아니는 크로니카 소베르시바의 1908년 호에 독자들에게 경고와 함께 교정된 텍스트를 제공했다.<ref name="A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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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아니는 비슷하게 전투적인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와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는데 The Persistent Refusal of Paradise 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Cquote|말라테스타와 갈레아니가 정기적으로 충돌한 지점중 하나는 혁명 이후의 무엇이 만들어질지 계획하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였다. 말라테스타는 중단을 허용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는 사회생활을 조직하는 방법을 즉시 개발해야한고 주장했다. 반면 갈레아니는 아나키스트의 임무는 이 사회의 파괴라고 주장했고, 지배의 논리에서 벗어난 미래 세대가 재건하는 방법을 알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다름에도 불과하고 말라테스타는 갈레아니를 니힐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비난을 가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차이는 오직 질문의 건설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괴적인면에 대해 완전히 동의했다. 이 부분은 많은 해설가들에 의해 생략되지만, 말레테스타 역시 반란주의자였으며 국가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적인 반란의 지지자였다.<ref>[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penelope-nin-the-persistent-refusal-of-paradise The Persistent Refusal of Paradise]</ref>}}
 
==추방==
갈레아니스트에 시작된 연쇄 폭탄 공격이 있은지 3주 뒤에 미정부는 1919년 6월 갈레아니와 그의 추종자 8명을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하지만 이는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당국이 그를 정부에 대한 폭력적인 봉기를 호소하는 외국인으로 분류했기 때문이였다. 이탈리아에서도 갈레아니는 크로니카 소베르시바를 출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