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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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_Brutus_Massimo.jpg|thumb|브루투스의 두상]]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또는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브루투스''' (Marcus Junius Brutus, Quintus Servilius Caepio Brutus, [[기원전 85년]] – [[기원전 42년]])는 [[로마 공화정]]말기의 정치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자 중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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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는 [[폼페이우스]]의 군단장이었던 같은 이름의 아버지와 어머니 [[세르빌리아 카이피오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세르빌리아는 원로원의 강직한 정치가인 [[카토 (소)]]와 이부남매 지간이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부였다. [[플루타르코스]]는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기원전 77년]] [[술라]]의 대숙청 때 아버지가 죽고 그는 외삼촌인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에게 양자가 되어 한동안 삼촌의 이름을 썼다. 어머니 세르빌리아는 아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서 브루투스는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 섬]] 등지에 유학했다.
 
그는 이종삼촌인 카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처음 정치생활을 시작한 것도 카토가 [[키프로스]]의 총독으로 갈때 그를 보좌하면서 부터 시작했다. 브루투스는 키프로스에서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 로마로 돌아왔다. 이때 [[소아시아]]의 총독으로 있던 [[키케로]]는 그의 고리대금업을 강하게 비난했다. 로마로 돌아와서는 정계에 진출해 "원로원파"(보수적인 공화주의파벌)에 가담했다. 그는 [[제1차 삼두정치]]에 반대했는데 특히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한 폼페이우스를 미워했다.
 
=== 내전 ===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아버지의 원수이지만 지금은 원로원파를 이끌고 있는 폼페이우스의 편에 가담했다. 카이사르는 정부인 세르빌리아의 부탁을 받고 특별히 전쟁터에서 브루투스를 죽이지 말 것을 부하들에게 명령했고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군이 대패하자 포로가 된 그를 용서하고 즉시 석방하였다. [[기원전 46년]] 삼촌 카토가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메텔루스 스키피오]]와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카이사르와 격전을 벌일 때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호의로 [[갈리아 키살피나]]총독으로 파견되었고 무난히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다.
 
로마로 돌아온 그는 갑자기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무슨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미망인이 된 카토의 딸, 포르키아 카토니스와 결혼하였다. 카이사르의 밑에서 그는 계속 출세하여 [[기원전 44년]] [[법무관]]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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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분류:기원전 85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