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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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969년]] - [[976년]]
|황후=테오도라
|이전 황제=[[니케포루스 2세]]
|다음 황제=[[바실리우스 2세]]
|목록=[[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마케도니아 왕조 (867-1056)|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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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음모와 전임황제의 암살로 인해 황제가 되었지만 테오파노와의 결혼을 총대주교가 반대하자 테오파노를 유배보내 버리고 특유의 매력으로 백성의 환대를 받았다.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콘스탄티노스의 딸인 테오도라와 결혼하여 지위를 강화하고 [[972년]]에는 [[신성로마제국황제|서방황제]] [[오토 2세]]와 자신의 가문 출신의 여자(이 여성의 이름도 ''테오도라''임)를 결혼시켜 서방제국과의 관계도 강화하였다.
 
그의 치세는 크게 [[키예프 공국]]과의 전쟁과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키예프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는 도나우 강 하류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와 맞서 싸웠는데 [[972년]] 황제는 러시아군의 허를 찔러 선제공격하여 패배시키고 개선식 때 그는 불가리아의 보리스 2세를 폐위해 버리고 동부 불가리아를 다시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러시아와 불가리아를 평정한 후 요안니스는 동방에서 압바스 왕조와의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잠시 로마교황의 혼란에 말려들었다. 프란코라는 보제가 [[대립교황]]이 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해 온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요안니스는 다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나 [[안티오키아]]에서 출발, [[에메사]]를 전투없이 수복하고 바알베크, [[다마스쿠스]], [[티베리아스]], [[카이사레아]], [[베이루트]], 비블로스까지 정벌하였고 [[예루살렘]]은 수복에 실패하였다. 이는 놀라운 성과로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래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동방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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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니케포루스 2세]] <br /> (963 - 969)
|후임자=[[바실리우스 2세]]<br /> (976 - 1025)
|임기= [[969년]] - [[976년]]
|직책='''[[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마케도니아 왕조 (867-1056)|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분류:925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