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카를로타 호아키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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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 왕실은 브라질로 피신했다. 당시 그녀의 친정인 스페인 왕실 또한 프랑스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카를로타는 자신이 스페인의 왕위계승자라고 여겼다. 이후 포르투갈 왕실은 14년 만에 고국으로 들아왔고 그 사이 포르투갈의 상황은 급변해 있었다. 절대왕정이 몰락하고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신헌법이 채택되었는데, 절대왕정을 신봉했던 카를로타는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남편 주앙 6세는 신헌법을 준수하려 했고 카를로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대왕정을 지지하는 아들 [[미겔 (포르투갈)|미겔]]과 손을 잡고 주앙 6세를 유폐시켰다. 그러나 영국의 개입으로 남편이 미겔에게 양위하게 하려던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주앙 6세는 아들을 추방했다.
 
[[1822년]] 주앙 6세는 세상을 떠났고, [[브라질의 군주|브라질 황제]]로 있는 아들 [[페드루 1세 (브라질)|페드루 1세]]가 귀국하기까지 나라의 통치는 아내 카를로타가 아닌 딸 이자벨 마리아에게 맡길 것을 당부했다. 카를로타 또한 남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거부하였고, 포르투갈 왕실에는 그녀가 주앙 6세를 독살하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 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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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자=[[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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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렬:카를로타 조아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