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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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9년 이들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추대할것을 의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아래에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흰 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가서 보았더니 박같이 생긴알이 있어서 알을 깨어보니 그곳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아이를 혁연히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혁거세(赫居世)라고 하고 박에서 나왔다며 성을 박이라고 해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밀양 박씨는 박씨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종이다. 밀양 박씨는 한국의 성본 중 [[김해 김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이는 조선 후기 민적법 시행 전후 성씨가 없던 천민들이 밀양 박씨가 과거 왕족이라는 이유로 성씨를 책택되어채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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