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림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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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림 1세는 1470년 경에 [[아마시야]]에서 바예지드 왕자와 [[둘 하드르 왕조]]의 지배자 [[알라 알다울라]]의 딸인 아이샤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509년]], 바예지드는 셀림을 [[트라브존]]의 산자크로 임명했다. 이때 형제들인 아흐마드는 아마시야의, 호르후드는 [[안탈리야]]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셀림이 지배하게 된 트라브존은 수도 [[이스탄불]]에서 가장 먼 지역이었다. 이는 후일의 계승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셀림은 자신의 영지를 유럽 지역으로 변경하고자 했다. 이것이 어려워지자, [[1509년]] [[8월]]에 셀림은 자신의 아들 [[쉴레이만 대제|쉴레이만]]에게 카파의 통치권을 얻어 주었다.<ref name="이날즉1"/>
 
바예지드 2세의 치세에 오스만 제국은 [[샤 이스마일]]의 발흥으로 인해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흐마드는 온건파로서 부황과 대재상의 호감을 샀다. 반면 셀림은 주전파로서 중앙 정부의 허가 없이 독단적으로 성전을 수행함으로써 [[예니체리]], [[시파히]], [[아킨지|아쿤아킨]]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ref name="이날즉1"/>
 
[[1511년]] [[3월]], 셀림은 바예지드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 해 8월 패배하여 아들의 영지인 카파로 도주하였다. [[9월]], 바예지드는 아들 아흐마드를 이스탄불로 불러 그 자신의 직위를 계승하게 하려 하였으나, 셀림을 지지하던 예니체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에 실망한 아흐마드가 [[1512년]] [[3월]]에 반란을 일으키자 바예지드는 셀림을 수도로 불렀다. 이스탄불에 입성한 셀림은 아버지 바예지드를 유폐시키는데, 바예지드는 결국 [[1512년]] [[4월 19일]]에 죽는다. 이에 대해서는 셀림의 암살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ref>H. İnalcık, “Selīm I,”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9(Leiden: Brill, 1997), pp.127-2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