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환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에이니스 (토론 | 기여)
잔글 에이니스님이 동주 환왕 문서를 주 환왕 문서로 이동하면서 넘겨주기를 덮어썼습니다: 대상을 지칭할때 '동주'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아무도 없음, 고집스럽고 쓸데없이 긴 표현에...
에이니스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0번째 줄:
}}
 
'''동주 환왕 희림'''(周 桓王 姬林)은 [[주나라]]의 14대 왕이다. [[동주 평왕|평왕]]의 손자며 태자 예보의 아들이다. 평왕이 사망했을 때 태자 예보가 이미 요절했기 때문에 즉위했다.
 
== 사적생애 ==
즉위한 뒤 경(卿)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킬 계획을 하였다. 마침 주나라와 정나라가 인접해 있어서 정나라가 경계를 넘어 벼를 베는 일이 잦았는데, 이를 빌미로 [[정 장공]]을 경사(卿士)의 직위에서 파면한 뒤 괵공(虢公) 기보(忌父)를 경사로 삼았다. 정 장공은 이에 불만을 느껴 이후로 환왕을 조현하러 오지 않았고, 주나라와 정나라는 서로 악감정을 갖게 되었다.
즉위한 후 제후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또 주와 영지를 접하고 있는 [[정나라|정]]이 경계선을 넘어 [[기장 (식물)|기장]]을 수확한 것을 빌미로 [[정 장공]]을 경사의 직위에서 파면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장공은 일절 조현하지 않게 되어 주와 정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기원전 707년]], 환왕은 [[채나라|채]], [[위 (춘추 전국)|위]], [[진 (규성)|진]]과 연합해 정을 공격했지만 패하여 주 왕실의 힘이 쇠한 것을 드러낸 꼴이 되어버렸다([[수갈 전투]]).
 
[[기원전 707년]]에 환왕이 [[채 (춘추)|채나라]], [[위 (춘추 전국)|위나라]], [[진 (춘추)|진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수갈(繻葛)에서 크게 패했고 본인도 전투 중 정나라 장수 축담(祝聃)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후로
환왕이 왕권의 강화에 노력했지만 주 왕실의 쇠퇴는 멈추지 않았고 제후 사이의 분쟁을 저지하는 영향력을 잃었다. [[기원전 697년]]에 환왕은 사망했고 태자 타([[동주 장왕|주 장왕]])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차자 극을 사랑했기에 사후 왕실의 분란을 초래했다.
환왕은 [[괵 (춘추)|괵나라]] 이외에는 다른 제후국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고, 주나라는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쇠약해졌다.
 
재위할 때 괵공 기보의 뒤를 이어 괵공 림보(林父),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차례로 경사가 되어 집정했다.
{{주나라의 왕}}
 
[[기원전 697년]]에 죽었고, 아들 [[주 장왕|장왕]]이 섰다. 죽기 전에 장왕을 태자로 정해 놓고서 차자인 왕자 극(克)을 총애하여 주공 흑견이 왕자 극을 지지함으로써 왕실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임후임
|전임자=조부 [[주 평왕|평왕 의구]]
|후임자=아들 [[주 장왕|장왕 타]]
|임기=[[기원전 719년]] ~ [[기원전 697년]]
|대수=14
|직책=[[주나라]]의 왕
|앞이름=전 임
|뒤이름=후 임
}}
{{주나라의 역대 군주}}
 
[[분류:생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