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번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8번째 줄:
|결과 = [[청 제국]]의 승리
|교전국1 = [[파일:Flag of the Qing Dynasty (1889-1912).svg|center|95px]]<center>[[청나라|청 제국]]</center>
|교전국2 = <center>삼번<br />([[운남성]], [[광동성]], [[복건성]])<br />[[오주 (국가)|오주]]<br /><br />[[정씨왕국]]</center>
|지휘관1 = '''[[강희제|성조 강희제]]'''
|지휘관2 = [[오삼계]]<br />[[상지신]]<br />[[경정충]]<br />[[정경 (정씨왕국)|정경]]
29번째 줄:
[[1674년]](강희 13년), 오삼계는 호남을 점령하고, 군을 동서로 나누어 서쪽은 사천성, 섬서성에 동쪽은 광서, 복건으로 진군시킴과 동시에 상가희, 경정충에게 호응을 권유하였다. 경정충은 유혹에 넘어가 반란을 일으키지만, 상가희는 반대를 했기 때문에 상지신에게 살해 당하고 상지신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가세해 대만에서 정경(정성공의 아들)도 호응을 하여 한때는 장강 이남 모두 오삼계 세력의 손에 떨어졌다.
 
그러나 오삼계 등의 반란은 대의명분 보다는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는 두텁지 않았다. 오삼계 등은 만주족을 내쫓고 한족의 세상을 되찾는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남명에서[[남명]]에서 저항하던 한족 왕조의 망명 정권을 남쪽으로 추적해 멸망시켰고,멸망시킨 이로것은 인해오삼계 등 반란 주도자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또한 오삼계 등 세 명은 모두 동등한 지위로, 지휘권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약점으로 인해 청도 서서히 세력을 만회하고, 반란군을 각개 격파 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1676년]](강희15년), 섬서가 진압되어 상지신이[[상지신]]이 항복한다. 경정충도[[경정충]]도 청에 항복하고 창을 돌려 반란군 토벌에 참가하게 된다.
 
[[1678년]](강희 17년), 열세에 서게 된 오삼계는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오주 (국가)|주]]로 삼고 독립을 선언했지만, 반년 후에 병사하게 된다. 다른 주나라와 구별하여 [[오주 (국가)|오주]]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