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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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과정에 대한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서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시시각각 브리핑 되었다. 권양숙이 선물로 받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노무현을 '공공의 적'으로 몰았다. 훗날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는 권양숙이 시계를 받고 버린 건 사실이지만, 논두렁에 버렸다는 자극적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국정원의 여론 공작이었다고 폭로했다.<ref>경향신문 2015.02.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50600065&code=940301 (단독)원세훈 때 ‘노무현 죽이기’… "국정원 행태, 빨대(익명 취재원) 아닌 공작 수준"]</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뇌물 수수 의혹은 수사가 진행될 수록 커져만 갔다. 아내가 뇌물을 받았다는 노무현의 주장과는 달리, 박연차는 검찰 조사에서 노무현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자녀들의 집 장만을 위한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고,<ref name="leeinkyuchosun">{{뉴스 인용 |title="아이들 집이라도 사줘야한다며 盧 전 대통령 부부가 돈 요구"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17/2011061700251.html |work=조선일보 |date=2011년 6월 17일}}</ref><ref name="directcall">{{뉴스 인용 |title=“盧 ‘100만 달러 보내라’ 직접 전화” |url=http://news.donga.com/3/all/20090411/8718963/1#csidx9d3692bb8b6f274811aebb76910472a |work=동아일보 |date=2009년 4월 11일}}</ref><ref name="yonhapbribery">{{뉴스 인용 |title="盧, 박연차에 전화 걸어 100만弗 요구"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4/11/0200000000AKR20090411036600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09년 4월 11일}}</ref>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요청을 받고 차명계좌에서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와 조카사위 연철호가 동업하는 기업에 5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도 밝혀졌다.<ref name="leeinkyuchosun"/> 이같은 뇌물 수수 직접 개입 의혹이 수면으로 부상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ref>{{뉴스 인용 |title=[박연차 게이트] 盧 궁지로 몬 뉴욕 아파트 |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14004007#csidxa6d72417cba175bb7f132561a0e2bec |work=서울신문 |date=2009년 5월 14일}}</ref><ref>{{뉴스 인용 |title=달러 용처 말바꾸기…노 전대통령쪽 궁지 |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4745.html |work=한겨레 |date=2009년 5월 13일}}</ref>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김해시)|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였다.
노무현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09년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김해시)|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서거하였다. 노무현이 서거하면서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는 노무현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시켰다
 
노무현이 사망하면서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는 노무현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시켰다.<ref>{{뉴스 인용 |title=[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법무부, 검찰수사 중단 지시 |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52329077 |work=한국경제 |date=2009년 5월 23일}}</ref> 수사가 중단된 후에도 우병우는 박연차의 진술 외에도 노무현의 뇌물 수수를 입증하는 증거는 많다고 강조하였다.<ref name="rohinvestigation">{{뉴스 인용 |title=[Magazine D/Topic]우병우의 길, 최재경의 길, 윤석열의 길 |url=http://news.donga.com/3/all/20161109/81245919/1 |work=동아일보 |date=2016년 11월 9일}}</ref>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 대부분이 검찰 조직에서 물러나거나 승진에 실패하였다. 우병우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검사장 승진에 연속으로 실패하였는데,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를 노무현 뇌물 수수 의혹 수사로 인한 불이익으로 여겨 사직하였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 대부분이 검찰 조직에서 물러나거나 승진에 실패하였다.<ref name="rohinvestigation"/> 우병우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검사장 승진에 연속으로 실패하였는데,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를 노무현 뇌물 수수 의혹 수사로 인한 불이익으로 여겨 사직하였다.<ref name="rohinvestigation"/>
 
==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