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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훈'''(金益勳, [[1619년]] ~ [[1689년]] [[3월 11일]])은 [[조선]] 후기의 외척이며 문신, 군인, 정치인으로문신이다. [[조선 숙종|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종조부이다.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으로, 자(字)는 무숙(懋叔)이고 호는 광남(光南)이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출사하여 [[부총관]],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보사공신]] 2등으로 광남군(光南君)에 [[봉군]]되었다.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출사하여 [[부총관]],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보사공신]] 2등으로 광남군(光南君)에 [[봉군]]되었다. [[서인]] 중진이자 척신 계열의 정치인으로 [[남인]]을 공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복창군]]·[[복선군]](福善君)·[[복평군]](福平君) 등이 허견(許堅)과 모역을 꾀한다는 고변으로 [[경신대출척]]을 일으켜 [[김석주]]와 더불어 [[남인]]들을 몰아내는 데 적극 가담하였다. 허견의 비리와 부패행위 정보를 입수하여 사건을 확대, 숙종의 외당숙 김석주와 함께 역모 사건을 날조하여 남인들을 일망 타진하려다가 서인이 [[노론]], [[소론]]으로 분당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사계 김장생]]의 손자이자 [[김집 (1574년)|김집]]의 조카이며, [[송시열|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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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mjangsaeng 01.jpg‎|thumb|left|120px|할아버지 [[김장생|사계 김장생]]<br />[[서인]] 예학의 종조였다.]]
 
광남 김익훈은 [[1619년]] [[사계 김장생]]의 손자이자 [[참판]]을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김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첨중추(僉中樞)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예학자이자 [[북벌론]]자이며 [[조선 효종|효종]] 때 [[민회빈 강씨]]의 사면 복권을 주장하던 신독재 [[김집 (1574년)|김집]]의 조카였다. [[인경왕후]]의 조부이자 [[병자호란]] 때의 순절신 [[김익겸]](金益兼)은 그의 형이며, 인경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만기 (조선)|김만기]]와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저자 [[김만중]] 형제들은 그의 조카였다.
 
[[송시열|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송시열은 [[이이]]와 할아버지 김장생, 숙부 김집의 학맥을 계승한 서인의 학자이며 [[성리학]], [[예학]]의 권위자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조선 인조|인조]] 때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강화도]]로 피난갔다가, [[여진족]]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