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악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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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는<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54 김 총비서 '음악은 나의 첫사랑'] - 통일뉴스</ref> 유명한 인생지론을 갖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한다.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라고 규정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cp_art_view.html?artid=20091020162240A 北김정일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 경향신문</ref> 나아가서 북측의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일이 "인류 정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라는 새로운 경륜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현실화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찬양하였다.<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77637 북한 매체 "인류정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 구현"] - 데일리NK</ref> 다시 말해 북한의 음악은 유일사상과 부자세습 체제의 구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 목적은 인민들에게 공산주의에로의 투쟁을 고무시켜 주고 계급교양 및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있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민경찬 교수는 설명하였다.<ref>[http://www.sac.or.kr/magazine/s_m_view_a.jsp?mag_id=1062 북한음악의 이해] - 민경찬 음악평론가 </ref>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정치적인 해석으로 모란봉악단의 결성은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를음악정치를 김정은시대에 계승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하였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484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 모란봉악단 앞세운 '열린 음악정치'] -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ref> 다시 말해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가 이른바 조선식 전자음악을 연주한다는 [[왕재산경음악단]](1983년 창단, 그후 왕재산예술단으로 변경)과 [[보천보전자악단]](1985년 창단) 그리고 조선식 팝스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2009년 창단)으로 대표된다면 김정은시대의 음악정치는 2012년 모란봉악단으로 그 화려한 시작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를 음악정치의 시원으로 보는데<ref name="lsa_mbb" />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혁명음악의 전통을 이룩하여 주체음악예술의 일대 개화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ref name="lsa_mbb">{{저널 인용|author1=이선애|author2=|title=김정은 시기 모란봉악단의 공연활동에 관한 연구|date=2014-12|publisher=인제대학교 대학원}}</ref> 또한 '음악정치'란 말은 2000년 2월 7일 평양에서 열린 [[인민무력성]] 집회에서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 집회에서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을 비롯한 인민군 고위 장성들은 토론에서 "지금 그 어느 시대에도 있어보지 못한 우리 식의 특이한 음악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ref>[http://office.kbs.co.kr/tongil1/archives/4153 음악정치] - KBS 북한백과</ref> 즉, 음악정치는 [[김정일]]이 음악을 사상이나 총대처럼 중시하고 음악을 통해 전체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그 위력으로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왔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독재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고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통제와 폭력은 물론 대중의 취향을 동일화하는 전략도 취하는데 음악이 독재자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며, 음악을 통해 독재자는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획일화하는 한편 집단적 정체성에 강한 에너지와 열정을 부여한다는 것이다.<ref name="m_song">{{서적 인용|author1=민은기|author2=|title=독재자의 노래|date=2012|publisher=한울|isbn=978-89-4604-622-1}}</ref> 또한 그들은 음악가들에게 독재 체제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작품들을 만들도록 요구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대중의 가치와 의식을 조종한다고 민은기 서울음대교수는서울음대 교수는 그의 저서 '독재자의 노래'에서 설파하였다.
 
=== 파격적인 첫 시범공연 ===
[[김정일]] 시대에 도입되기 시작한 전자악기는 모란봉악단에서 더욱 새롭게 등장하였다. 모란봉악단은 첫 무대에서 전기바이올린 3명과 전기첼로 1명의 현악 4중주단을 중심으로 전기기타/베이스 각 1명, 드럼 1명, 색소폰 1명, 피아노 1명, 전자건반악기(신디사이저) 2명의 연주자들과 가수 6명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선보였다. 모란봉악단 공연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 화려한 조명과 무대장치, 현대적 전자악기, 여성단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 기존의 북한 공연과는 확연한뚜렷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첫 무대였던 2012년 7월의 시범공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공산주의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 인형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원쑤'의 나라인 미제국주의 상업영화 '[[록키]]'의 영상을 무대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고 주제곡까지 연주하였다. 미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ref name="joins_kang">[http://news.joins.com/article/19276211 '모란봉'은 김정은 음악정치 전위대] - 중앙일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f>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는교수는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행보는 주민들에게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화'의변화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젊고 활기찬 새로운 지도자상,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7/09/0200000000AKR20130709180700014.HTML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등장 1년…활약상 띄우기] - 연합뉴스</ref>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에 대하여 "공연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 편성, 연주 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으며<ref name="tongil_d">[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9227 모란봉악단, 파격공연으로 '불문율'을 깨다] - 통일뉴스</ref> 또한 노동신문은 "우리 당의 음악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가는 모란봉악단이야말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해 나가는 제1나팔수다"라고 보도하였다.<ref>[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3703 북한 연구 | 김정은 ‘악단정치’의 비밀] - 월간중앙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f>
 
[[파일:Mbb_logo.jpg|thumb|right|모란봉악단의 로고.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휘감는 오선지 그림이다.]]
북한의 음악은 혁명성과 인민성, 정치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예술의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도자 개인의 찬양과 우상화 추구를 위한 대중매체로 변질된 것은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ref>[http://musichistory.or.kr/wp-content/uploads/2016/02/%EC%9D%B4%EC%9E%AC%EC%9A%A9_%EA%B9%80%EC%9D%BC%EC%84%B1_%EB%B6%89%EC%9D%80%EB%8F%85%EC%9E%AC%EC%9D%98%EB%85%B8%EB%9E%98.pdf 김일성 붉은독재의 노래 이재용] - 음악사 연구회 제1집 2012</ref> 예를 들어 모란봉악단을 상징하는 로고는 2012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노동당]] 창건 67주년 경축공연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단원들의 군복 오른쪽 상단 부분에 큼지막한 금색의 배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휘감는 오선지 모양이었고 오선지에는 두 마디의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 단원들은 이 배지를 드레스 혹은 군복 등의 공연의상과 관계없이 항상 오른쪽 가슴 상단에 달고 무대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모란봉악단의 로고에 담긴 그 악보가 도대체 어떤 노래일까 궁금했지만 다름아닌 바로 [[김정일]]을 우상화하고 찬양하는 '[[김정일 장군의 노래]]' 첫 소절 부분으로 규명되었다.
 
또한 2015년 10월 18일, 노동당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청봉악단]]의 평양 공연 마지막 날에 [[김정은]], [[리설주]] 부부는 모란봉악단의 단원들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장인 [[인민극장]]의 현관 홀에서 모란봉악단의 지도부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에서 [[인민극장]] 현관 홀에도 마찬가지로 '[[김정일 장군의 노래]]' 악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벽에 커다랗게 부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민은기 서울음대교수는서울음대 교수는 저서 '독재자의 노래'(한울아카데미, 2012)에서 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닌 이러한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음악을 비판하였다.<ref name="m_song" />
 
== 첫 시범공연 이후 ==
=== 악단의 한계 ===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시범공연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해외 유학을 경험한 젊은 지도자 [[김정은]] 새로운'감각있는' 개혁과퍼스트레이디 개방의[[리설주]]가 의지를새로운 보여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라는관측이 평가와있었지만 기대가 교차하였다.이상 하지만나아가지는 거기까지였다못하였다. 이후 모란봉악단의 신곡은 '불타는 소원'<small>(2012년)</small>,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small>(2013년)</small>, '그이 없인 못살아'<small>(2013년)</small>, '자나 깨나 원수님 생각'<small>(2014년)</small>, '날아가다오 그리운 내 마음아'<small>(2014년)</small>, '우리의 김정은 동지'<small>(2015년)</small>, '김정은장군께 영광을'<small>(2016년)</small>, '아버지라 부릅니다'<small>(2017년)</small> 등 김정은 개인에김정은에 대한 찬양과 충성을 맹세하는 가사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ref name="joins_kang"/> 가장 최근에 발표된 '아버지라 부릅니다'는 악단의 가수 류진아가 2014년 5월 노동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었던, 김정은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다는 내용을 모티브로 삼은 듯 같은 제목이기도 하다.
[[파일:Rodongsinmun 20131221.jpg|thumb|left|2013년 12월 21일 로동신문 1면의 김정은 찬양노래 표지기사]]
2013년 12월 21일 노동신문은 1면 전면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그이 없인 못 살아'라는 신곡 악보를 김정은 사진과 함께 컬러로 실었는데, '우리의 운명 김정은 동지, 그이 없으면 우린 못 살아'라는 비장한 가사로 끝나는 노래 악보에는 '절절하게 부르라'는 주문이 쓰여 있다. 또한 노동신문은 다음 날에는 1면에 이 노래에 대한 반응을 보도하였는데 노래가 김정은을 지칭하는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하늘처럼 굳게 믿고 사는 천만군민의 민심을 반영했다고 주장하였다.<ref>[http://nk.joins.com/news/view.asp?aid=13050534 하루아침에 북 히트곡 된 '그이 없인 못 살아'] - 중앙일보 북한네트</ref> 결론적으로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음악정치, 그 선봉에서 최고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2017년 4월 북한의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반동적인 사상 문화'가문화가 제국주의 침략의 '주역'으로주역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하며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색깔 혁명' 즉, 정권교체 혁명을 거론하며 제국주의의 사상적 침투가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과 파국적 위기'를위기를 가져왔다고 강변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29/0200000000AKR20170429065700014.HTML 北매체 "제국주의 사상·문화는 침략주역…공격전 벌여야"] - 연합뉴스</ref>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의 첫 공연에서 미 제국주의 상업영화 주제가와 그 캐릭터 인형들을 선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기조가 아닐 수 없다.
 
=== 악단의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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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어린이의약품 지원 건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던 SBS 오기현 PD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악단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향희'를 최고의 스타로 여긴다고 한다. 이른바 북한의 아이돌인 것이다. 예전에는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 (가수)|전혜영]]이나 '반갑습니다'의 이경숙 등 가수들이 최고 인기였는데, 오 PD는 가수도 아닌 연주자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 이례적이라고 부연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601033.html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악단' 뜨면 삼촌팬 들썩] - 한겨레</ref>
 
또한 2014년 3월 일반에게 공개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동신문]]은 공연 첫날 5천석 규모의 [[4.25문화회관]]이 초만원을 이뤘다고 보도한 데 이어,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열풍으로 수도 평양이 흥성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예술공연국으로는 매일같이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과 관련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주장하였다.<ref>[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5/story_n_5025637.html 북한에도 '소녀시대'가 있다] - 허핑턴포스트</ref> 또한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맞아 노동신문은 "전국을 들었다 놓고있는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 노래포성은 문학예술의 감화력과 견인력이 얼마나 큰 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당은 문학예술 부문의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모란봉악단의 창조정신,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06 北,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개막...'모란봉악단 정신·기풍 배우자'] - 통일뉴스</ref> 모란봉악단은 문예부문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모범이 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맞아 노동신문은 "문학예술혁명의 포성을 힘차게 울리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사상문화를 혁명적 사상공세로 단호히 짓부시고 사회주의 수호전에서 결정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전국을 들었다 놓고있는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 노래포성은 문학예술의 감화력과 견인력이 얼마나 큰 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오늘 우리 당은 문학예술 부문의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모란봉악단의 창조정신,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06 北,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개막...'모란봉악단 정신·기풍 배우자'] - 통일뉴스</ref> 모란봉악단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적인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모리 토모오미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2015년 10월 13일 숭실대에서 열린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모란봉악단, 그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중심으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음악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모란봉악단은 그 형식과 내용 모두가 김정은의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며 "악단이 창설 후 곧바로 북한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예술영역은 물론 사회 분위기나 유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메시지로서 악단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ref>[http://news1.kr/articles/?2456205 北 모란봉악단은 존재 자체가 김정은 메시지] - News 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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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산농업대학 입구의 느티나무 옆에는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께서 보아주신 느티나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4500&num=91564 김정은 우상화 가속…현지방문 표식비 세워] - 데일리NK</ref> 또한 2016년 9월의 원산 에어쇼에서 공개된 북한공군 여자 조종사들의 미그21 전투기에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보아주신 비행기'라는 붉은 명판이 붙어 있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는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데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직접 관람한 횟수만도 수십 차례 이상이었다. 단장 [[현송월]]의 2014년 5월 노동신문 기고에 의한다면 김정은은 모란봉악단 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깊은 밤, 이른 새벽과 명절날, 일요일에 나온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정이 깊은 밤에 나온 김정은을 새벽녘에 바래다준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최고 영도자가 이렇게 세심한 지도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은 악단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신문은 2014년 5월 19일 사설에서 모란봉악단이 "우리 당의 친솔악단, 국보적인 예술단체"라고 주장하였으며, 2015년 5월 14일 1면의 '모란봉악단의 진군나팔소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모란봉악단의 음악에 바로 당의 목소리, 시대와 혁명의 요구가 담겨져있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어떤 정신과 투쟁기풍, 창조방식으로 최후승리를 위한 총공격전을 다그쳐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투쟁과 생활의 교과서와도 같다"라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악단을 문화예술분야의 모범대상으로 부각시켜왔던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가 '혁명 과업'의 최전선에서 군대와 인민을 이끄는 존재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신문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모란봉악단의 노래들은 몇천만 톤의 식량에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강동완 동아대교수는 그의 저서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에서 음악은 때로 수천, 수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 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는 김정일의 음악정치를 계승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식 음악정치가 모란봉악단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ref name="kdw_mbb">{{서적 인용|author1=강동완|author2=|title=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date=2014|publisher=도서출판 선인|isbn=978-89-5933-744-6}}</ref>
 
== 악단의 음악적 스펙트럼 ==
배인교 단국대 연구교수는 '2010년대 북한 중앙음악단체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국악원 논문집, 2015)에서 북한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악 현상만을 검토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그 이유는 수많은 문화예술이 대부분 북한의 정치적 사안들과 맞닿아 있으며 당의 정책적 요구가 수용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 name="gugak_b">[https://www.gugak.go.kr/site/inc/file/fileDownload?dirname=/sites/gugak/files/site/20160503&filename=JNGC_031_004.pdf 2010년대 북한 중앙음악단체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 - 배인교] - 국악원 논문집 2015</ref> 마찬가지로 모란봉악단 역시 곡목 선정이나 배치, 공연의상 하다못해 단원들 모두 짧은 단발머리로의 변신 또한 모두 당의 선전선동 부서 결정이라는 관측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악단의 새로운 음악들이 영도자의 찬양만을 노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 한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악단의 모든 음악적 색채는 단원들과 지도부의 의사만이 아닌 당 선전선동 부서의 주도면밀한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2010년 4월 준공식을 가진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에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ref>[http://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82676 김정일 "자기 땅에 발 붙이고 세계를 보라"] - 데일리NK</ref>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다른 나라의 우수한 것을 보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모란봉악단은 초기에 미국 상업영화 주제가를 비롯한 외국의 음악을 상당수 연주한 것으로 보이지만 음악예술의 영향과 파급력을 염려한 지도부는 그후 체제수호와 당 그리고 영도자를 위한 노래들로 공연을 채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란봉악단의 세계명곡묶음 연주(2013년 1월 1일 공연 영상<ref>[https://www.youtube.com/watch?v=xd-SS99coYw 모란봉악단 세계명곡모음 동영상 2013년 1월 1일] - YouTube </ref>, 2014년 5월 19일 공연 영상<ref name="mbb_20140519">[https://www.youtube.com/watch?v=nrKDcfT07bc 모란봉악단 세계명곡모음 동영상 2014년 5월 19일] - YouTube</ref>)는 세계 음악 팬들의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외국음악 연주로는 모짜르트 No.40,<ref>[https://www.youtube.com/watch?v=gm2mm8RbzGU 모란봉악단 모짜르트 No.40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ref> Csárdás,<ref>[https://www.youtube.com/watch?v=d-rEsJBhLUY 모란봉악단 Csárdás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ref> Zigeunerweisen,<ref>[https://www.youtube.com/watch?v=i-1iEYCBzes 모란봉악단 Zigeunerweisen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ref> Ma Reine de Saba<ref>[https://www.youtube.com/watch?v=9wQkij2l-8E 모란봉악단 Ma Reine de Saba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ref>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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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width:4em;" align="center"|김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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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는 예전 [[은하수관현악단]]의 모란봉중창조 가수로 활동하였으며 2015-2017년 7월 [[청봉악단]] 가수이었으나, 2017년 9 ~ 12월 모란봉악단의 원산 ·함흥 ·신의주 ·강계 ·안주 ·남포 ·사리원 지방공연에서 '륙군소좌'의 계급장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예전 [[은하수관현악단]]의 모란봉중창조 가수로도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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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따돌림 ===
한편 계급의 강등뿐만 아니라 공연에 따라서는 카메라의 따돌림도 존재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특정 단원의 클로즈 샷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위에서 소위로 3계급이나 강등되었던 가수 김유경은 무대에 따라 한때 카메라 따돌림의 대상으로 충분히 의심되기도 하였다. 모란봉악단 디스코그라피 사이트의 [[페카 코르호넨]] 교수는 2013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8주년 기념공연에서 가수 김유경과 박미경은 의도적인 카메라 따돌림의 대상이었으며 마치 실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가수 같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pk_10102013" /> 또한 페카 코르호넨 교수는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면에서점에서 북한의 방송시스템은 무척 솔직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누구를 보여주고 누구를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ref name="pk_10102013">[https://morandisco.wordpress.com/2013-10-10/ 2013-10-10 Concert review] -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ref> 김유경은 몇 차례의 공연 무대에서 독창 혹은 중창 심지어는 세 사람이 부르는 노래에도 참여하지 못했으며 고작 5중창 혹은 6중창 무대가 전부였다. 그뿐만 아니라 무대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배치되고 그리하여 카메라의 포커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ref>[https://morandisco.wordpress.com/2014-04-04/ 2014-04-04 Concert review ] -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ref> 페카 코르호넨 교수는 분명히 김유경도 그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고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김유경에 대한 카메라 따돌림은 2년 만인 2015년 10월 11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경축공연에서 비로소 사라지게 된다. 이 공연에서 김유경은 풀 화면으로 혼자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였으며 조국향과 듀오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김유경은 2015년 10월 24일 공식적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의하여 대위로 다시 계급이 복귀되었으며 드디어는 모란봉악단에서 세 번째로 공훈배우 칭호를 받게 된다. 2016년 2월 그리고 5월의 공연에서 김유경의 어깨에는 작은 별 4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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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애의 연구논문에 의한다면,<ref name="lsa_mbb" /> 모란봉악단의 공연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2010년에 창작된 '당을 노래하노라'와 1950년에 창작된 전시가요 '진군 또 진군'이었다.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는 차영도<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1/06/0200000000AKR20120106032800014.HTML 北, 시인 차영도에 '김일성 훈장' 수여] - 연합뉴스</ref>의 시에 황진영이 곡을 붙인 '당을 노래하노라'와 '진군 또 진군' 노래는 첫 시범공연에서 2014년 5월 공연까지 21회의 공연에서 아홉 번을 등장했으며 두 노래는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틈을 뛰어넘으며 가장 많이 불렸다고 한다.<ref name="lsa_mbb" /> 그리고 공연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이른바 '김정은 노래'가 가장 많이 불릴 노래, 앞으로 그 자리에 오를 것임은 명백해 보인다.
 
강동완·박정란 교수는 논문 〈김정은 시대 북한사회 변화와 전망:공연 분석을 중심으로〉에서 김정은의 국가정책 목표인 경제-핵무기 건설 병진노선의 내용이나 김정은의 개인 우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 등은 모두 모란봉악단 공연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되고 있고 따라서 모란봉악단은 최소한 김정은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여러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 악단이 갖는 위상을 고려할 때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대상화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분석하였다.<ref name="inss_2014">{{서적 인용|author1=|author2=|title=정책연구 통권 180호|date=2014-03|publisher=국가안보전략연구소|page=75}}</ref>
 
== 같이 보기 ==
*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