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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종이 겨우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의 명종이 즉위하여 왕대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되니 형세는 역전하였다. 이번에는 소윤 [[윤원형]]이 득세하여 전일(前日)의 윤임 일파를 제거하게 되었다. 즉 예조참의로 있던 윤원형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평소 대윤파와 사감(私感)이 있던 지중추부사 [[정순명]](鄭順明), 병조판서 [[이기 (1476년)|이기]], 호조판서 [[임백령]](林百齡), 공조판서 [[허자]](許磁) 등 심복들과 더불어 계책을 꾸몄다. 또 한편으로 그의 첩 [[정난정]]으로 하여금 문정왕후와 명종을 선동케 하여 형조판서 [[윤임]] 및 그 일파인 이조판서 [[유인숙]](柳仁淑), 좌의정 [[
한편 사화의 여파는 그 후 6년에 걸쳐 계속되었고, 윤임 등을 찬양하였다는 등의 갖가지 죄명으로 유배되거나 죽은 자의 수가 거의 100명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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