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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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그림=Statue-Augustus.jpg
|작위=[[로마
|재위=
|후임자=[[티베리우스]]
|본명=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배우자=[[클로디아 풀크라]]<br />[[스크리보니아]]<br />[[:en:Livia Drusilla|리비아 드루실라]]
|황조=[[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
|아버지=[[가이아스 옥타비우스]]<br />[[율리우스 카이사르]] (양아버지)
|어머니=[[아티아 발바 카이소니아]]
|자녀=[[율리아 아우구스투스]]
|출생일=
|출생지=[[로마 공화정]] [[로마]]
|사망지=[[로마 제국]] [[놀라]]
|왕가=[[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사망일=
}}
'''아우구스투스'''({{lang|la|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제2차 삼두 정치의 붕괴 후 옥타비아누스는 대외적으로 '''[[로마 공화정]]'''을 부활시키고 정부에 관한 권한은 [[로마 원로원]]에게 주었으나, 사실상 권력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일한 통치자가 다스리지만 대외적으로는 공화국 형태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껍데기만 공화국인 이 나라는 훗날 [[로마 제국]]으로 불린다. 황제권은 옥타비아누스 이전에 로마를 통치했던 카이사르와 [[술라]]의 [[독재관|독재권]]과는 전혀 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독재권을 부여받았지만” 거절하였다.<ref name="ccaa 35"> CCAA, Erich S. Gruen, ''Augustus and the Making of the Principate'', 35. </ref> 법에 따르면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평생 동안 권력을 가지도록 하였고 “호민관 권한”(tribunitia potestas)을 가졌으며 [[기원전 23년]]까지 [[집정관]]을 역임하였다.<ref> 《로마의 역사: 아우구스투스 시대》 153쪽. </ref> 아우구스투스는 재정적인 성공과 원정에서 얻은 물자, 제국 전체에 걸쳐 맺은 여러 피호 관계(clientela), 군인과 재향 군인의 충성, 원로원에서 부여한 여러 권한과 명예<ref name="eck 3"> Eck, 3. </ref>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로마의 정예병 [[로마 군단]]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원로원에게 군사적인 위협이 되어 원로원의 결정을 억압하였고,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여 원로원의 정적들을 제거하여 원로원이 자신에 복종하게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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