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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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5년]] [[10월 21일]] (보안대)<br/> [[1946년]] [[1월 11일]] (철도보안대)<br/>[[1946년]] [[8월 15일]] (인민집단군 총사령부)<br/>[[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국적 = {{국기나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제 = {{육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br/ > {{해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br/ > {{공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br/ >[[조선인민군 전략군]]<br/>[[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특수부대]]
|충원방식 = [[모병제징병제]]
|명령체계 = [[인민무력성]]
|본부 = {{국기나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징집 연령 = 17세
|병력 = 124만명108.2만명
|예비군 = 770만명<br/>
* [[교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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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농적위군]]
* [[인민내무군]]
|최고사령관통수권자 = [[김정은]]
|인민무력부국방장관 부장 = [[황병서박영식]]
|총참모장 = [[리영길]]
|예산 = ~ 11조8,300억원<ref>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spending.htm World Wide Military Expenditures</ref>
|예산 = ~ 7,000,000,000 USD+n
|GDP 대비 = 15.8%
|정부재정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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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조선인민군 (신문)||인민무력성의 기관지}}
'''조선인민군'''({{lang|ko-hani|朝鮮人民軍}})은 [[조선로동당]]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로동당의 군대지만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군대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조선로동당|로동당]] 규약 제46조에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고 규정하여 [[조선로동당]]의 군사 조직 성격을 갖는다. 조선인민군은 [[육군]], [[해군]], [[공군]], [[조선인민군 전략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을 인민군 총참모장이 지휘하는 단일종합군체제이다.
 
조선인민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서 '''[[인민군]]'''(人民軍) 또는 '''혁명무력'''(革命武力)으로 불린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군'''(北韓軍)이라고 불리며 1990년대까진 '''북괴군'''(北傀軍)이라고 불렸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점을 들어 '''북한 공산군'''(北韓 共産軍)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었다.
 
== 개요 ==
[[징병제]]이며 통상 중학교 졸업생(17세)을 대상으로 징집하며, 전문학교 진학자는 졸업시, 공장·기업소 취업자는 25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병력 충원시 수시로 강제로 징집하고 있다. 복무연한은 종래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였으나 [[2001년]] 복무연한을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까지로 각 3년씩 단축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인해 [[2006년]] [[지원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북한의 사회 분위기상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남성의 경우는 혜택을 덜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남성들은 군대에 지원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ref>국정원, [http://portal.nis.go.kr/app/north/information/military/view?midArr=M03200700&fieldArr=&keyWord=&page=2&dataNo=495&hcode=452126866692441031386159&viewNo=21&gubun=&localCode= 북한의 군 징병제도]</ref>
 
[[대한민국]]에서의 무력침공 시에는 열세한 장비를 방대한 병력과 포병력과 특수부대로 보완하여 대한민국 영내에 전방과 후방에 대한 전격적 침공(속도전, 速度戰)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측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주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력의 70%를 평양-원산선 이남의 전방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여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전]]의 수행이 불가능할 만큼 낙후된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조선 인민군'''은 장비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립된 [[경제]]적·[[외교]]적 상황으로 인해 통상전력으로 대한민국과 대등한 군비경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탄도미사일]], [[핵무기]], 화학 · [[생물학 무기]], [[잠수함]] 등의 비대칭 전력에 집중하고 있다.
 
[[군인]]을 국가의 근간으로 한다는 "선군령도(先軍領導)"에 기반하여 인민군에 대한 대우는 한결 나아졌다. [[정치]], [[경제]],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조선인민군은 우선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군인은 각 영역에 세력을 서서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군인들이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에 많이 진출하여 정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 자원의 1/3을 인민군과 군수 사업에 투자하고있다.
 
== 역사 ==
=== 창설 ===
[[파일:Foundation ceremony of the Korean People's Army.jpg|thumb|300px|조선인민군 창군. [[김일성]] 초상화 양쪽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 창건
[[파일:Emblem of the Korean People's Army (1948).png|thumb|left|150px|1948년 2월부터 7월까지 사용했던 조선인민군의 상징]]
현재 조선인민군의 모체이다.
[[1945년]] [[10월 12일]], 평양 주둔 소련 25군 사령부는 한반도 북부의 모든 무장조직의 해산을 명령하였고, 이어 [[10월 21일]] [[동북항일연군|소련군 출신 조선인]]을 중심으로 보안대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인민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 출신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1948년]] [[2월8일]], 정규군으로 강화.
한편 이와는 별도로 철도경비를 담당하는 철도 보안대를 [[1946년]] [[1월 11일]]에 창설하였다.
또한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 학원(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48년 12월제1 군관학교로 개편) 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창설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같은 날 인민 집단군 총 사령부로 개칭했다. 초대 총사령관으로는 [[최용건]], 부사령관에는 [[김책]]이 추대되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7개월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초대 총사령관은 [[최용건]], 부사령관은 [[김책]]이었고, [[1950년]] [[김일성]]이 총사령관, 최용건은 부사령관이 되었다.
 
[[1947년]]부터 [[한국 전쟁]](6.25전쟁) 전까지의 [[소련]]의 무기 원조와 [[1949년]] 7월 동북의용군 소속의 조선인으로 구성된 164사, 166사, 독립 15사가 귀국하여 조선인민군 5사단, 6사단, 12사단을 편성함으로써 조선인민군의 전력은 크게 증강되었다. 이중 6사단의 모태가 되었던 만주의 [[리홍광]] 지대는 1945년 11월 부대 창설시에는 [[조선의용군]] 제 1지대였다. 그러던중 1946년 2월 조선인 지도자였던 리홍광의 이름을 따서 동북 만주연군 [[리홍광]] 지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7년 동북 만주연군 요동군구 독립 제4가사 되었고, [[1948년]] [[11월]]에 중국 동북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독립 제166사로 되었다가 인민군 제6사단으로 편제되었다.
 
=== 6.25전쟁 ( 조국 해방전쟁)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수립으로 분단이 기정사실화된 이후 38도선상에서는 끊임없는 무력충돌이 계속 벌어졌다. [[1950년]] 봄까지 38도선 상에서는 소규모 병력간의 [[국지전]]이 계속 되었으며 지리산 등지의 남부산악지대에선 [[빨치산]](파르티잔)게릴라과 토벌군과의 전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소련의 지원을 얻은 북한이 남침을 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 기습남침과 그에따른 국군의 준비 미약으로 조선인민군은 빠른시간내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남침을 진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미국의 추종하에 벌어진 국군의 무력도발과 이를 사전에 파악하고 준비하고 있던 조선인민군의 반격으로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17개나라가 참전한 유엔군의 상륙으로 전쟁이 장기화 되였고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였다.
 
=== 전후 ===
종래 [[1948년]] [[2월 8일]]을 창군일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해오다가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 투쟁전통과 연결" 한다는 명분하에 [[김일성]]이 중국에서 [[항일 유격대]]를 창설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로 창군일을 변경하였다.<ref>국정원, [http://portal.nis.go.kr/app/north/information/military/view?midArr=M03200700&fieldArr=&keyWord=&page=4&dataNo=492&hcode=130484544424487480635159&viewNo=2&gubun=&localCode= 북한의 군 창건 과정]</ref>
종래 [[1948년]] [[2월 8일]]을 창군일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해오다가 [[1978년]]부터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4월25일을 창군일로 개정해 기념하고 있다.
 
=== 현재 ===
현재 '''조선인민군'''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유류]]나 각종 군수품의 보급이 부족하여 제대로 훈련을 실시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식량]] 또한 부족해 상당수의 병사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군 기강이 문란해져 병사들의 탈영과 민간에 대한 약탈이 빈번해지고 있고, 군관들은 그나마 보급된 자원을 횡령 · 착복하고 있는 데다가 국경지역의 북한 정치지도원들은 탈북자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돈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금(지폐)으로 500만원을 받고 탈북을 시켜 주는 등의 부정행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전방사단 병력은 얼룩무늬 군복을 착용한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12/28/0200000000AKR20101228060500043.HTML 북한군 전방사단 병력 '얼룩무늬군복' 착용] 2010-12-28 연합뉴스</ref>
 
[[2010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한 발표로 조선인민군은 [[전자전]] 능력도 보유하였다.<ref>[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0&no=537456 <nowiki>[국정감사]</nowiki> 김태영 국방 北 전자전 능력 보유] 2010-10-05 매일경제</ref>
 
== 규모 ==
조선인민군은 정규군 약 124만명119만명, 예비군 약 770만명으로 세계 3위의 병력규모를 보유하고 있다있고<ref name="국방백서">《2008 국방백서》, 대한민국 국방부, 2009년 1월 19일</ref>, 총 병력면에서는 세계 4위로 평가된다.
 
== 지휘 체계 ==
조선인민군의 최상위 지휘기구는 [[국무위원회국방위원회]]이다. 국무위원회는국방위원회는 전반적인 국방정책을 관장하는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1992년]]의 헌법 개정에 의해 헌법기관이 되었다.
 
[[국무위원회국방위원회]] 소속에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인민무력성]], [[보위사령부]]가 있다. [[총정치국]]은 군의 정치사상 과업을 관장하고, 군 통수권(집권자 김정은에게 명령을 받고 통솔한다)을 가지는 [[총참모부]]는 육·해·공군의 작전을 지휘·통솔한다. 북한 헌법개정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의 수평적 지휘체제가 됨으로써 [[인민무력성]]의 위상과 기능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인민무력성]]은 여전히 군의 대표기관으로서 군수, 재정 등의 군 정권을 행사한다. [[보위사령부]]는 군내의 방첩활동을 관장한다.
 
==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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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로켓군 ===
{{본문|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
[[미사일지도국]]에서 [[전략로켓사령부]]로 바뀌었다. 규모는 기밀인데 군단급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전략 로켓군]]은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작전 배치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ref>[https://archive.is/20120709132909/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347938 대포동 발사, 김정일 직접 지시] 중앙일보, 2006.07.08 04:59</ref>
[[미사일지도국]]에서 [[전략로켓사령부]]로 바뀌었다.
예하에 4개의 미사일 공장과 12개의 발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0242230&code=41111111 〈北미사일 발사〉 北,800기 미사일 보유…발사 기지 12개 넘어], 2006.07.05 18:02</ref> 1993년 5월 로동 1호 미사일,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백두산 1호) 미사일,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백두산 2호 혹은 목성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바 있으며, 2009년 4월 5일 은하 2호 위성발사 로켓을 발사한 바 있다.
본래 미사일지도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2년]] [[3월 3일]] [[김정은]]이 전략로켓사령부를 시찰한 이후부터 전략로켓사령부의 존재가 알려졌다. 동년 [[4월 15일]] 열병식 부터 참여하였으며, 그 존재가 [[김정은]]의 연설로 전략 로켓군으로 공식화 되어 발표되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6/2012041600143.html 김일성 흉내내며 '김정일의 말' 한 김정은[北 김정은 첫 대중연설]
김일성 스타일 따라하며 김정일式 선군정치 역설 육·해·공군과는 별도로 '전략로케트군' 첫 표현 제4군 창설한 듯… 핵·미사일 더 주력할 가능성] 조선일보, 2012.04.16 03:05</ref>
탄도미사일(재래식 탄두, 화학 탄두, 핵 탄두)을 운용한다. KN-08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실시하였다.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 할 수 없다. TEL에 탑재되어 있는데 TEL은 정찰 위성이나 레이더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다. 150~250여 기가 실전배치된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탄도 미사일의 TEL도 27~40대로 파악되고 있다. 괌을 사정권에 둔 무수단 탄도 미사일 운용부대는 14대의 TEL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 특수부대(제 11저격여단) ===
=== 특수작전군 ===
조선인민군 특수부대는 총 20만여 명의 병력 규모로 비대칭적인 전력이다. [[한국 전쟁]](북한명:조국해방전쟁)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대한민국]] 영토에 병력을 후방으로 집중 침투시키고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등의 역할을 계속 하였다.
기존11군단(폭풍군단)을 모체로 2017년 4월15일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 제5군종인 특수작전군이 창설된것이 공개되였다.
<ref name="1960s">Bolger, Daniel P., "Scenes from an Unfinished War: Low Intensity Conflict in Korea, 1966-1969", Leavenworth Papers No. 19,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Ft. Leavenworth, Kansas, p. 86</ref>
 
=== 예비 전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