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주크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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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역사: 셀주크의 초기 정착 역사는 10세기 중반부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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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제국'''([[터키어]]: Selçuklular ''셀추크룰라르'', [[페르시아어]]: سلجوقيان ''살주키얀''; [[아랍어]] سلجوق ''살주크'', 또는 السلاجقة ''알살주키야'') 또는 '''셀주크 튀르크'''는 [[11세기]]경에서 중반부터 [[12(~14)세기12세기]]까지 중반까지 [[중앙 아시아|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를 말한다. '''셀주크 왕조'''라고 하기도 한다. 셀주크튀르크는 중앙아시아<ref>유라시아 중앙부에 있는 건조한 지대. 파미르(Pamir) 고원을 중심으로 동은 알타이산맥, 서는 카스피해, 북은 시베리아 평원, 남은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과 쿤룬(Kunlun) 산맥에 둘러싸인 지역이다. 옛날부터 유목과 실크로드를 이용한 대상(隊商)의 통과무역(通過貿易)이 행하여졌다.</ref>의 부족 연합체로 발흥하여 중동에서 [[튀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고 [[제1차 십자군]]이 공격하는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터키]], [[투르크메니스탄]]의 튀르크인들의 문화상 조상으로 간주되고 [[이슬람]] 문화를 보호하는 왕조였다.
 
== 초기 역사 ==
10세기950년 중반무렵 수장 [[셀주크]]가 지휘하는 유목민 일단이 [[볼가강]]을 넘어 [[흑해]] 연안에 있는 [[스텝 (평야)|스텝]] 지역으로 건너왔다이주한 것이 셀주크 제국의 기원이다. 부족 오구즈가 그 기원으로 알려진 셀주크 가문은 곧 남하하여 이란 북부에서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한 후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 페르시아에 동화했고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조의 용병으로 있었으나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확장하였다.
 
셀주크인들은 처음에10세기 후반 [[사만 왕조]]와 동맹하고 [[카라한 왕조]]와 [[가즈나 왕조]]와 항쟁했으나 사만 왕조가 권력투쟁에서 패하자 독립된 권력을 쟁취하고자 스스로 투쟁했다투쟁하기 시작한다.
 
== 셀주크 제국의 발전 ==
셀주크의 손자인 [[차그리 베그]]와 [[투으룰 1세]]는 가즈나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에게 지원받았으나 [[1037년]] [[가즈니 왕조|가즈니]]를 역으로 공격하여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웠다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셀주크 제국이다. 1055년 토그릴은 시아파 부와이 왕조에게서 승리하여 바그다드를 정복했기에 셀주크는 수니파 칼리프 주도하에 이슬람의 통일을 회복하게 한 존재로 간주됐다. 1063년 투으룰은 이란 서부와 메소포타미아를 포괄하는 제국의 수장이 되었다.
 
투으룰은 자식이 없었기에 형제 차그리 베이의 아들 [[알프 아르슬란]]이 투으룰의 직위를 계승했다. 이때에 이르러기점으로 셀주크의 세력을세력은 더욱엄청난 속도로 강대해져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권을 확대했으며 1064년,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국가)|조지아]]를 복속하였고 [[1068년]]에는 비잔티움제국의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였다.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티움 황제 [[로마누스 4세|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를 포로로 붙잡았다. 이로써 셀주크인들은 소아시아로 진출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알프 아르슬란을 계승한 [[말리크샤 1세]]에는 제국의 영토가 더욱 확장됐다. 이슬람의 침입 이전 이란의 영토였던 지역의 대부분을 복속하였는데 동으로는 [[중국]]과 서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말리크샤 1세는 제국의 수도를 [[라이 (이란)|라이]]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바그다드에 학교를 세우고 군대 제도를 개선하였다. 말리크샤 1세의 치세에 셀주크제국은 전성기를 이루어 [[1087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게서 "동방과 서방의 술탄"의 칭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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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국 내 행정 조직을 개편하여 크나큰 이슬람 문화를 남긴 대재상 [[니잠 알물크]]는 가즈나 왕조 시절 후라산에 생긴 마드라사를 서아시아로 옮겼다. [[마드라사]] 조직이 형성되자 행정 관료들과 신학자들에게 통일된 교육을 훈련하게 할 수 있었으나 니잠 알물크는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아사신]]에게 살해당했다.
 
== 제국의 분할과분열과 1차 십자군 ==
[[1092년]], 말리크샤 1세가 죽자 제국은 말리크샤 1세의 아들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분열된다. 시리아는 말리크 샤의 동생 투투쉬의 자식들이 차지했다. 쿠탈미쉬의 손자 [[킬리지 아르슬란 1세]]는 소아시아를 차지했다. 말리크 샤의 아들들이 제국의 중심인 이란을 두고 골육상쟁했다. 셀주크의 이런이러한 분열을혼란을 틈타 [[1095년]] [[군중 십자군]]과 [[1차 십자군]]이 연달아 침공해 왔다. 킬리지 아르슬란은 군사력이 약한 군중 십자군을십자군은 이겼으나 제1차 십자군을 얕잡아보아비웃다가 니케아에서 크게 패배, 1차 십자군은 니케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을 차례로 정복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비록한 [[십자군 국가|기독교 국가]]를 세웠다.
 
[[1105년]], 말리크샤의 장남 바르키야루크가 죽자 그 사람의 이복동생 무함마드 타파르가 이란 전체에서 셀주크 가문의 수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118년]], 무함마드 타파르가 죽자 그 사람의 동복동생 아흐마드 산자르가 가문의 최연장자로서 조카들을 제압하고 제국을 계승했으나 이란 서부와 이라크에서는 무함마드 타파르의 자식들이 그 사람에 종속된 술탄으로서 통치했다. 아흐메드 산자르는 각지에서 일어난 [[카라한 왕조|카라한]]과 반란에 대처하여야 했고 [[제2차 십자군]]의 침입에도 맞서야 했다.
 
[[1153년]], 오구즈인들이 반란했고 산자르는 이 사람들에게 생포되었다. 오구즈인들은 산자르의 영지인 후라산을 마구 약탈했다. [[1156년]], 산자르는 이 사람들에게서 탈출하여 영지로 돌아왔으나 질서는 회복하지 못했다. 산자르는 [[1157년]] [[5월 8일]]에 죽었다. 제국의이것으로 분열은제국은 가속됐고사실상 해체되었으며, 아타베그들은 독립했다.
 
== 제국의 몰락해체 이후 ==
[[1189년]]경에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위대한 술탄 [[살라흐 앗 딘]]의 지도하에 시리아가 셀주크의 세력하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어서 [[1194년]] 이란의 마지막 셀주크 술탄이 전사하고전사하면서 제국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1200년1197년]]경 셀주크족의에는 권력은셀주크족은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철수했다철수한다. 비슷한 시기이듬해에는 [[그루지아]]와 [[조지아]]도 [[아르메니아]]와 함께 셀주크의 영향력을 벗어났다. 1200년에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압바스]] [[칼리프]]도 점차 힘을 키워서 독립했고독립하고자 했고 예전 셀주크 제국에서 남아있는 곳은 소아시아의 [[룸 술탄국]]과 주변뿐이었다뿐이었다.
 
13세기에13세기 이르자마자초반에 셀주크는들어오면 심하게셀주크가 몰락하여지배했던 지역은 크게 몰락해있었고 1250년대 [[몽골 제국]]이 [[아나톨리아]]를 침입했을침공했을 때에는 이미 군사력을 완전히상실한지 오래였으며 셀주크 지역이 지배했던 상실하여지역들은 수많은 [[토후국]]으로 분할되어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 하나인 [[오스만 튀르크]]가 나중에 셀주크 제국을 이어받은 대제국을 세우게 된다.
 
== 역대 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