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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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군왕(安定郡王)에 봉해졌다.
 
[[531년]]에 기주(冀州) 발해군(渤海郡)의 태수(太守)를 맡았다. 당시 북위 조정에서는 [[이주세륭]]이 [[원엽]]을 폐하고 [[북위 절민제|절민제]]를 세웠는데, 발해왕 [[고환 (북제)|고환]]은 이주씨의[[이주씨]]의 토벌을 내세우며 신도(信都)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그해 [[음력 10월 6일]]에 손등(孫騰)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랑을 황제로 세웠다. 원랑은 신도성의 서쪽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연호를 중흥(中興)으로 바꿨다. 이로써 북위는 절민제와 원랑 2명의 황제가 대립하게 되었다.
 
고환을 시중, 승상, 도독중외제군사, 대장군, 녹상서사, 대행대(大行臺)로 삼았고, 고건(高乾)을 시중, 사공으로 임명했다. 고오조(高敖曹)를 표기대장군, 의동삼사, 기주자사로 삼았고, 손등을 상서좌복야, 하북행대로 삼았고, 위란근(魏蘭根)을 우복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