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리비에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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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7월 12일에 파리에서 태어난 리비에르는 1842년 10월 에콜 네발레(École Navale)에 입학했다. 1845년 8월에 2급 해군 사관생도가 되었고, 그는 [[태평양]]에서 브릴란테(''Brillante'')를 타고 첫 해군 복무를 시작했다. 1847년 2월에 그는 남태평양 해군 사단 소속의 비르지니(''Virginie'')로 배치되었다. 1847년 9월에 1급 해군 사관생도로 승진했고, 1849년 9월에 해군 소위가 되었다. 다음 5년 동안 그는 예나(''Iéna'', 1850), 라브라도(''Labrador'', 1851)와 주피터(''Jupiter'', 1852~1854)를 타고 지중해 전대에서 근무했다. 의미심장한 이 기간의 기밀 보고서에는 그가 시와 문학에 과도하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되어 있다.
 
리비에르는 유라니(''Uranie''), 쉬프랑 (''Suffren''), 부르하스크(''Bourrasque'')와 몽떼벨로(''Montebello'')를 타고 [[크림 전쟁]](1854-56)에 참전했다. 1856년 11월 중위로 승진해서, 그는 1859년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렌 오르탕스(''Reine Hortense'')를 타고 복무했다. 1866년에는 론(''Rhône'')과 브랑동(''Brandon'')을 타고 [[멕시코 출병|멕시코 원정]]에 참전했다. 그는 1870년 6월에 대위 계급으로 승진했으며, [[보불 전쟁]] 중에는 프랑스 발틱 함대의 철갑 코르벳 테티스(Thétis)에서 2급 장교로 근무했다. 그는 이 여러 원정에서는 이렇다할 수훈을 세우지 못했다. 리비에르는 1870년대 후반에 [[뉴칼레도니아]]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반란을 진압하는데 역할을 해서 1880년 1월에 대위로 승진했다. 1881년 11월 리비에르는 [[사이공]]으로 전근되었으며, [[코친차이나]] 해군 사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이 전근은 일반적으로 기회가 거의 없는 벽지로 좌천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리비에르는 자신은 프랑스 한림원의 회원이 될 문학적 걸작품을 쓸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었다. 리비에르는 그의 성인 생활 대부분을 해군 장교로 보냈지만, 문학적 영전을 이루고 싶은 야심도 있었다. 그는 《라 리베르떼》(''La Liberté'')의 기자였으며 《두 세계 평론》(''Revue des deux mondes'')에 게재된 기사를 쓰기도 했다.
 
==통킹 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