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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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외통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이화여대에 재적하고 있던 그의 딸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5차례에 걸쳐 '가계곤란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김앤장 로펌 고문으로 일하면서 2009년 8760만원, 2010년 1억5600만원을 받은 억대 연봉자였다.
 
2016년 9월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국 공안(경찰)을 제주도에 파견하는 방안을 중국 측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발언하였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에서 위안부 합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2017년 1월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교 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시설물이나 조형물(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합의” 후> ===
* 위키피디아 전문 :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한-일 위안부 협상]]
2015년 12년 2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한-일 위안부 합의 사항을 발표하였다. ([http://mofa.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9&boardid=749&seqno=302418 한-일 위안부 합의 기자부 회견 전문 (외교부 기사)])
 
2016년 1월 17일 김한길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고 자리에서 "한일 간 비공개 합의문이 있느냐"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제가 아는 한 없다"고 답했다. 
 
2016년 1월 29일 위안부 할머니들께 "평생 한을 안고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상처를 덜어드리고자 합의를 도출했다"며 A4용지 프린트 편지를 보냈다.
 
2016년 3월 2일,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전시 성폭력’을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의 하나”라며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그 대표적 사례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6년 9월 13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방문하였다.
 
2016년 12월 22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안부 합의 불만 알지만 당시로선 최선 결과"라고 대답했다.
 
2017년 1월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 보고에서 윤장관은 '10억엔을 우리가 달라고 했느냐, 일본이 주겠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내가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1월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교 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시설물이나 조형물(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2017년 6월 19일 이임식과 함께 외교부장관에서 퇴임하였다. 윤병세장관은 4년 3개월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역대 3번째로 오래동안 복무한 외교부장관으로 남았다.
 
2016년 9월 2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국 공안(경찰)을 제주도에 파견하는 방안을 중국 측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발언하였다.
 
2017년 12월 27일 한-일 위안부 합의 TF 보고서에 대한 답변으로 "비공개 부분은 핵심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유감을 표했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의 복합성과 합의의 본질적·핵심적 측면보다는 절차적·감성적 요소에 중점을 둠으로써 합의를 전체로서 균형있게 평가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http://www.mofa.go.kr/image/res/result_report.pdf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 (외교부 메인)]
 
== 학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