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니콜라오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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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 5세는 아스콜리의 에녹과 조반니 토르텔리의 도움을 받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필사본을 포함해 9만 권의 서적을 구출해 이들을 소장할 도서관을 설립했다. 교황 본인은 그의 친구인 에네아 실비로 피콜로미니(훗날의 [[교황 비오 2세]])도 “그는 인간의 지식 범위 밖에 있는 것 외에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해박학 지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니콜라오 5세는 [[바티칸 도서관]]을 설립하고 학자들이 이곳에 와서 연구하는 것을 지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말년====
하지만 그의 치세는 1454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빛바리게 되었다. 1452년 늦은 봄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침략이 임박하자 도움을 요청하는 친서를 니콜라오 5세에게 보냈다. 이에 니콜라오 5세는 위기에 처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돕기 위해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힘을 합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대신에 그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10척의 교황령 함선을 제노바와 베네치아, 나폴리 함선들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그 전에 제국의 수도가 점령되면서 이들 함대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